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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J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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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소의 전시

종료

2023년 12월 16일 - 2024년 2월 14일

PANORAMA

<div>갤러리JJ는 2023년 한 해를 마감하는 전시 를 마련하였다. 본 전시는 JJ가 올해 주목하고 선별한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기회로, 그동안 함께해온 작가의 신작 및 2023년 새롭게 선보이는 JJ컬렉션들로 구성된다. 형상적이고 감각적인 회화 공간을 구축해오며 한국 회화사의 중요한 작가로 평가받는 서용선의 신작을 비롯해 추상의 본질을 끈질기게 탐구해나가는 홍수연, 자유로운 상상력이 돋보이는 윤정원, 영국을 중심으로 세계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신미경의 비누 작업은 문명과 절대가치에 대해 질문하면서 동시에 조각에 대한 사유를 긴밀히 엮어나가며, 전원근과 사이먼 몰리, 닉 슐라이커의 각기 독특한 색면적 회화는 그들의 치열한 형식적 실험만큼이나 감상하는 재미가 남다르다. 자전적 이야기로 삶의 통찰과 행복을 전하는 미국 작가 아담 핸들러와 영국의 조지 몰튼-클락의 작품은 인간 본연의 근원적 창의성에서 비롯되는 순수한 감성을 일깨우며, 팝과 추상을 넘나드는 독특한 작품 세계로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Pan(모든)+Horama(경치)가 조합된 파노라마의 의미처럼 &lsquo;파노라마적 시각&rsquo;은 시야를 연속적으로 집합시키고 풍경을 이접적으로 종합한다. 따라서 이는 전체를 생각하고 서로간의 관계를 새롭게 경험할 수 있다. 전시에서 다양한 문화적 토양에서 길어낸 작품들은 진지한 삶의 통찰과 표현에서부터 인간 본래의 순수한 창조력까지, 회화적 공간에서부터 물질적 질료와 시공간의 세계에 이르며 펼쳐진다. 회화 및 조각 작품 27점으로 구성되는 이번 전시는 한해를 마무리하고 시작하는 시점에서 예술에서의 이러한 &lsquo;파노라마적 보기&rsquo;를 권하며 다양한 형식의 동시대 예술의 펼침, 그 경험을 통해 또다른 세계와 만나고 사유하는 시간을 기대한다.</div> <div><br /></div> <div>아담 핸들러(Adam Handler, b.1986)의 작업은 마치 어린아이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화면 속 고스트와 소녀 형상을 통해 유한한 삶의 허무를 극복하고 희로애락을 표현한다 그는 현재 뉴욕을 중심으로 국제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유망한 동시대 작가들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즉흥적이고 때로 장난스럽기도 한 화면 속에는 철학적이자 재치 넘치는 표현이 가득하다. 자전적 삶이 녹아있는 히어로들의 세계, 환상의 우주 정원으로 표현하는 등 천진난만한 시선으로 따뜻한 공감과 내면적 소통을 이어가는 핸들러의 작업으로부터 색다른 시각적, 예술적 경험을 기대한다.</div> <div><br /></div> <div>홍수연(Sooyeon Hong, b.1967)은 캔버스 위에 독특한 무중력의 공간을 창조하여 비정형적 형상들이 부유하는 듯한 움직임이 있는 추상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캔버스 자체를 기울여 중력에 의한 흘리기로 색을 입히는 새로운 회화의 방식으로 독특한 추상적 공간을 창조한다. 주로 단색조의 단순한 배경 속에 레이어들이 서로 겹쳐지면서 화면은 깊고 무한한 우주 같은 공간성을 획득하여 관객들의 각기 다른 상상력과 감성을 끌어낸다. 무엇보다 그러한 동적 움직임은 자신을 포함하여 끊임없이 변화하고 균형을 잡아나가는 우리 내면의 문제, 살아있음을 추상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div> <div><br /></div> <div>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전원근(Wonkun Jun, b.1970)의 예술세계는 삶을 &lsquo;색&rsquo;으로 반향하는 그림으로 압축할 수 있다. 우리에게 색면, 혹은 모노크롬적 추상회화로 친근한 그의 작업에서 발현되는 독특한 아우라는 반복적으로 색을 쌓고 &lsquo;닦아내는&rsquo; 전원근 특유의 작업방식에서 비롯된다. 가장 기본적 조형 요소인 점, 선, 면을 구성요소로 하는 가운데 작업은 흔히 우리에게 차갑고 이성적인 작업으로 정형화된 미니멀리스트의 작품과는 차별적으로, 절제된 가운데 따뜻함까지 포용하면서 정서적으로 다가온다. 작가는 예술이 주는 위안과 치유의 힘을 믿으며 이를 미학적 경험으로 안겨준다.</div> <div><br /></div> <div>사이먼 몰리(Simon Morley, b.1958)는 영국 출신으로 현재 한국에 거주하면서 파리를 오가며 작업하고 전시활동을 한다. 단색조의 화면을 보여주는 몰리의 작업은 문자와 이미지 간의 관계를 탐색하면서 관습적인 것들의 틈 혹은 &lsquo;사이(in-between)&rsquo;, 경계의 공간에서 사유한다. 화가이면서 여러 권의 전문서적을 펴낸 미술사가이기도 한 몰리에게 책과 문자는 뗄 수 없는 요소다. &lsquo;Book Paintings&rsquo;(북 페인팅) 시리즈는 책이라는 매체를 회화로 번안한 것으로, 문화를 혼합하고 영화의 특정 장면이나 사인보드를 회화로 옮기는 등 매체의 변환을 즐기는 작가의 성향을 대표하는 작업이다.</div> <div><br /></div> <div>영국 작가 조지 몰튼-클락(George Morton-Clark, b.1982)은 애니메이션과 회화를 접목한다. 그는 대중문화 속 고전 만화의 익숙한 캐릭터에 낙서 같은 추상적 요소를 더하는 가운데, 움직임을 표현하는 즉흥적 필치의 드로잉같은 독특한 작업을 선보인다. 이를테면 톰과 제리 등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작가의 추상적인 재해석을 통하여 예술적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작가는 아트바젤 등 미술시장에서 혜성처럼 떠오르면서 전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며 컬렉터가 늘어가고 있다.</div> <div><br /></div> <div>닉 슐라이커(Nick Schleicher, b.1988)는 촉각적 물질성을 지닌 색면적 추상회화를 중심으로, 한편 회화와 사물이 교차하는 오브제 작업을 한다. 그의 작업은 미니멀리스트의 명료성과 진지함에서 비켜서서 위트를 더하여 보다 정서적이며 인간적인 것을 추구한다. 작가는 회화의 지지체로서의 캔버스와 표면, 안료의 물성과 적용방식을 오래 탐구해 왔다. 특히 형광안료나 광택이 나는 젤 등 물성이 강한 매체로 아주 얇은 레이어를 만들며, 화면이 평평해질 때까지 반복적으로 층을 쌓아 나간다. 정확한 의도와 자유롭고 즉흥적인 구성이 함께 작용하여 각 레이어가 투명하거나 불투명하게 불규칙적으로 겹치고, 여기에 매끈거리고 반짝이는 안료의 물성이 더해지면서 화면에는 모호한 환영적 공간감마저 생긴다.</div> <div><br /></div> <div>런던과 서울을 오가며 유럽 유수의 미술관에서 전시하는 등 국제 무대에서 활동하는 신미경(Meekyoung Shin, b.1967)은 25년 가까운 오랜 시간 동안 조각의 재료가 아닌 &lsquo;비누&rsquo;라는 매체의 가변적인 물성과 풍화되는 유물의 형태를 대응시키면서 시간성을 가시화하여 시공간적 문화, 재료 간의 &lsquo;번역&rsquo;에서 오는 간극, 차이를 끄집어낸다. 모각에 따르는 재현과 원본성의 문제는 물론이고, 한갓 조각 재료의 대체제로 쓰인 일상 소모품인 비누의 물성은 견고한 권위의 조각적 형상과 충돌하면서 유물이 지닌 상징적 가치나 절대 가치, 문명에 의문을 제기한다. 응축된 시간을 중심으로 작업은 수많은 질문과 동시에 &lsquo;조각&rsquo;이란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div> <div><br /></div> <div>서용선(Yongsun Suh, b.1951)의 예술세계는 인간들의 &lsquo;삶의 세계 그리기&rsquo;로 압축된다. 작업의 모든 시각적 형상은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관심으로 이는 곧 인간의 삶을 조건 짓는 &lsquo;사회&rsquo;와 관계를 맺으면서 역사와 신화, 자화상, 도시 인물과 풍경 등으로 나타난다. 주로 강렬한 색채와 표현적인 터치가 있는 한편 압축적이고 간결한 구조와 질서를 보여주는 화면은 역사 속 개인의 삶, 사회 시스템 특히 서울, 뉴욕, 베를린, 멜버른 등 지구촌 대도시 상황에 처해진 현대인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이는 자신이 마주하는 삶의 세계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실존적 물음이다. 윤정원(Jeongwon Yoon, b.1971)은 자유로운 구성력과 판타지가 돋보이는 회화는 물론, 현대 여성으로 변신한 바비인형과 화려한 샹들리에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작업에는 제도화된 세상에 저항하며 자유에 대한 갈망을 품은 작가의 세계관이 담겨있다. 작가는 오브제나 설치, 회화와 사진 등의 매체를 거뜬히 넘나들며, 거대한 크기의 작업에서부터 소소한 일상적인 것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작업의 역량을 보여준다. 일상적 재료에 상상력을 불어넣은 그의 작품에서 삶과 예술, 꿈과 현실의 경계는 의미를 잃는다.&nbsp;&nbsp;</div> <div><br /></div> <div>글│강주연 갤러리JJ Director</div> <div><br /></div>

종료

2024년 5월 10일 - 2024년 6월 22일

전희경: 조금 더 짙고 푸르렀으며 Richer Viridian

<!-- wp:paragraph {"align":"center"} --> <p class="has-text-align-center"><em>&ldquo;떨어지자마자, 또는 심지어 떨어지면서, 또는 흩날릴 때조차도 이미 눈은 극히 거침없이, 지각 불가능하게 끝없이 우리 눈 앞에서 녹고 있지 않은가? &hellip; 녹고 있는 이 눈은 아직 눈으로 존재하는가? 또는 그것은 이미 물이 아닌가?&rdquo;</em> ―프랑수아 줄리앙, 『고요한 변화』</p> <p class="has-text-align-center"><br /></p><!-- /wp:paragraph --><!-- wp:paragraph --> <p>우리는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 또는 들어도 들리지 않는 것에 주의를 기울인 적이 종종 있었던가? 갤러리JJ는 자연을 매개로 내면세계와 추상적인 회화 공간을 탐구해온 전희경(b.1981)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작가는 물리적 현실이나 절대적인 것들의 사이 공간에 주목하여, 보이지 않는 심상을 자유로운 추상의 필치가 빚어내는 어떤 풍경, 장소 이미지로 제시한다. 이번 전시 &lt;전희경: Richer Viridian&gt;은 작가가 지난 2023년 1년간의 제주 레지던시 입주를 마친 이후 처음 열리는 개인전으로, 도시를 떠나 당시 자신이 몸담았던 짙고 푸른 자연에 영감을 받은 새로운 작품들을 선보인다. 전시는 약 4미터 길이의 대형 작품을 중심으로 20여점의 신작들로 구성되며, 특히 2021년부터 시작된 &lsquo;연속적 블루&rsquo; 시리즈는 부제를 붙여 새롭게 이야기를 이어가면서, 때묻지 않은 순수한 숲으로부터 무한한 우주공간을 연결하는 시도를 보여준다. 배경 위에 풍경이 놓이는 구도, 동적으로 상승하는 곡선 이미지가 자주 등장하는 등 작업은 보다 확장된 시야와 자연에 대해 유기적이고 관조하는 태도로 다가온다.</p> <p><br /></p><!-- /wp:paragraph --><!-- wp:paragraph --> <p>I.<br />전희경은 계곡이나 폭포를 연상시키는 요소 혹은 빛과 바람, 기후같이 비가시적인 자연현상에서의 감각적 경험과 회화적 상상을 더해 추상 언어로 풀어낸다. 이때 펼쳐진 전혀 다른 차원의 감각적이고 아름다운 회화 공간은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 세계로 다가온다. 다양한 톤의 초록과 푸른 색채, 거침없는 획의 흐름과 레이어를 통한 공간감, 중층적인 하얀 여백의 회화적 깊이만으로도 풍경을 암시하거나 상상의 장소를 가시화하며 예기치 않는 서사를 만들어내는 한편, 마치 전통 산수화에서 느끼듯 우리를 화면의 낯선 장소 속 여정으로 끌어들이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작업은 초기의 &rsquo;-살이&rsquo;시리즈(2009), 이어서 &lt;이상적 삶&gt;(2015)이나 &lt;이상적 풍경&gt;(2017) 등을 통하여 이상과 현실의 간극에서 느끼는 복잡한 감정들을 포착하거나 혹은 아예 도피처로써 유토피아를 암시하는 듯했다. 이후 점차 비가시적인 자연의 요소가 깊숙이 들어오면서 그림의 형식에서도 자유롭고 표현적인 붓 터치가 두드러졌다. &lt;바람에 대한 연구&gt;(2021)를 지나 &lt;연속적 블루&gt;시리즈에서는 자신의 내면 이야기를 비롯하여 동굴 등 미지의 자연 속을 탐험하는 서사구조가 두드러진다.</p><!-- /wp:paragraph --><!-- wp:paragraph --> <p>이러한 전희경의 추상적인 화면을 &lsquo;풍경&rsquo;이라고 명칭을 한다면 그것은 심상 풍경을 가리킨다. 이는 곧 작가 자신이 부유하는 현실과 이상 사이의 틈새, 욕망이 떠도는 사이 공간, 고정되지 않고 계속 나아가고 변화하는 규정할 수 없는 것의 가시적 표현이다. 미루어 보면, 작가에게는 지향하는 어떤 공간이나 일련의 장소성이 있으며 자연의 장소라는 뉘앙스를 의도한다. 애초에 풍경 예찬이나 관광적 풍경은 아니기에, 그의 풍경은 감각적인 방식으로 우리의 관심을 보이지 않는 저 너머의 세계, 자연을 매개로 도달하고자 하는 곳, 인간의 무의식에 본원적으로 내재된 자연의 형태 혹은 장소로 몰고 간다. 이제 제주도에서의 경험은 자연과 좀 더 가까워지고 유기적인 관계를 맺어 나가는 전환점이 된 듯하다. 이번 전시는 그가 직접 대자연의 &lsquo;숲&rsquo; 속으로 들어가 나무와 이끼, 빛과 바람 등을 온전히 몸으로 체험하고 받아들이면서 시시각각 달라지는 자연의 변화와 함께 요동치는 힘의 근원, 인간과 삶으로 확장한 사유의 리포트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보는 풍경은 &lsquo;자연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둘러싼 주변 환경, 그 사회의 모든 것이 투영된 문화&rsquo;이다.</p> <p><br /></p><!-- /wp:paragraph --><!-- wp:paragraph --> <p>II.<br />&lsquo;바람에 흩날리는 모든 풍경&rsquo;, &lsquo;조금 더 짙고 푸르렀으며 광활하고 눈부셨다&rsquo;, &lsquo;에메랄드빛 웅덩이&rsquo;&hellip; 화면처럼 제목 역시 무척 시적이고 누구나 한번쯤 느껴봤을 법한 표현이다. 작가는 일기를 쓰듯 작품 제목에서 개인적인 심상을 표현하며(실지로 그는 일기에서 작품 제목을 선택하기도 한다), 심지어 화면 속 이야기가 프레임 외부로 확장하여 그림과 그림 사이를 서로 연결할 수 있도록 서사의 전개 구조를 열어두고자 한다. 곧 하나의 회화가 그 자체로 완결된 작품인 동시에 물리적 공간에서 경험되는 회화 설치를 통해 여러 점의 회화가 연속되는 구조 사이에서 새로운 내러티브가 발생하는 방식을 모색한다. 아무리 회화가 문학적 요소를 배제하고 추상화되었더라도 관객은 내용을 찾고 작가는 은밀하게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는다. 그는 오래전부터 회화에서 구체적 형상 없이도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방식, 그림 속으로 들고날 수 있는 구조를 생각해왔다. 작품 속 기본 바탕칠에서부터 비롯된 흰색의 여백은 비어있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공간, 텍스트가 나아가는 생산 장소이다. 붓과 스퀴지, 해면스펀지 같은 다양한 도구를 사용하여 때로는 색을 지워내며 보여지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를 오간다. 이렇게 여백과 채워진 공간이 교차하면서 화면 속 장면을 따라 천천히 거닐 수 있는 서사구조에는 전통 산수화에서의 생명의 생성과 소멸이, 수사적 시공간이 겹쳐진다. 여기에서는 바라보는 주체와 대상은 분리되지 않는다. 작가는 2013년 겸재정선미술관에서 수상했던 경력이 있다. 전희경은 &lsquo;그리는 과정에서 자신은 마치 금강산을 유람하듯이 그림 속을 들고나면서, 그 풍경 속 장소를 오롯이 즐기는 유희자&rsquo;라고 말한다.</p> <p><br /></p><!-- /wp:paragraph --><!-- wp:paragraph --> <p>특히 이번 &lsquo;연속적 블루&rsquo; 신작들에는 배경이라고 할만한 공간이 등장함과 동시에 위에서 밑으로 내려본 듯한 새로운 시점이 등장한다. 이는 경관에 대한 재현적 관심이나 서구의 원근법이기보다, 동아시아 산수화의 원근에서 구현하는 삼원법으로 보면 심원, 혹은 조감법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작가가 작업에서 전통산수화의 방법을 생각한 것은 아니다.</p><!-- /wp:paragraph --><!-- wp:paragraph {"align":"center"} --> <p class="has-text-align-center"><em>&ldquo;머리 속에 떠있는 풍경을 그대로 떠서 우주, 곧 내면의 무한한 공간에 옮겨 놓고자 한다. 마치 원림을 내집앞에 만들어 놓던 옛 방식으로 말이다. 제주에서의 짧은 시간을 보냈기도 하여서 그런지, 망망대해에 떠있는 제주의 섬 모양이 내가 나의 내면에 옮겨다 놓은 어느 풍경 모습처럼 보이기도 해서인 듯하다.&rdquo;</em> ―작가노트</p> <p class="has-text-align-center"><br /></p><!-- /wp:paragraph --><!-- wp:paragraph --> <p>오히려 그는 배경에 풍경이 하나의 이미지로 얹어진 정물화 구도를 말한다. 바라보는 대상이나 배경으로서의 풍경이 아니라, 자신을 포함한 하나의 우주 풍경이다. 광활한 자연으로 들어가면 우리는 시간 속에서 달라지는 몸의 움직임이나 호흡이 어느덧 자연과 깊이 연결되면서, 주체로서의 내가 아닌 자연의 일부가 된다. 이와 같은 체험은 화면에서 모든 것이 연결되는 자연, 숲으로 연결되는 하나의 풍경, 무중력의 우주에서 내려다본 숲의 형태로 표현된다. 캔버스가 풍경 속 하나의 캡처가 아니라 여기서는 무한한 우주공간, 곧 작가 내면의 우주인 셈이다. 작가는 대자연의 풍경을 자신만의 작은 &lsquo;원림&rsquo;으로 만들어 화면 위에 자유자재로 풀어놓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원림(園林)이란 일종의 자연상태의 정원을 곁에 두는 문화로 사대부들의 헤테로토피아적 장소성을 지닌다. 지금껏 부유하며 맴돌았던 심리적 풍경이 어느덧 두께가 생기고 작가 스스로에게 일면 구체화되어 나타난 것일까? 고려와 조선시대에 &lsquo;정원&rsquo;과 같은 뜻인 집 안팎의 조경을 뜻하는 단어로 쓰이기 시작했으나 본래 중국에서 유래된 용어인 원림은 '놀고 휴식하는 장소'를 뜻하며 선비들의 관념과 사상이 축적되어있는 장소로써, 우리의 정서에 깊게 관여되어 왔다. 자연은 쉬는 곳이고 나를 편안히 안겨주는 곳이라는 인식은 18세기 후반의 영국에서 유행했던 픽처레스크 취향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도시 부르주아들의 반도시적 욕망의 표상일 수 있다. 도시에 살지만 작가가 꿈꾸고 나아가는 삶의 세계, 미지의 장소가 자연에 근거한 쉼터와 관계한다는 사실은 비단 작가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인간의 무의식에 본원적으로 내재하는 원형적 장소 혹은 아르카디엔의 세계, 치유 공간으로서의 현실의 유토피아, 혹은 오히려 심연일 지도 모르는 그곳은 자연을 향해 열려있다. 선이나 명상, 삶의 태도 같은 자신의 이야기를 녹여온 그림은 불안, 번뇌를 거쳐 욕망, 심상의 풍경에 이르기까지, 저 너머의 장소는 우리를 둘러싼 자연의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p> <p><br /></p><!-- /wp:paragraph --><!-- wp:paragraph --> <p>III.<br /> <em>&ldquo;이건 안개가 아니다. 나는 지금 필시 구름 속에 있다. 구름이 잠시 땅 근처까지 내려온 것이 분명하다.&rdquo;</em> ―작가노트</p><!-- /wp:paragraph --><!-- wp:paragraph --> <p>전희경에게 &lsquo;자연(自然)&rsquo;이란 말 그대로 '스스로 그러함'이며, 그는 &lsquo;물 흐르듯이 지나가는 모든 이치&rsquo;라고 말한다. 작업의 표현적 터치는 의도와 우연이 겹쳐서 만들어지지만 들여다보면, 작업에서 상승하듯 연속적으로 휘감기는 곡선의 획이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부드러우면서도 역동적인 에너지로 끊길 듯 새롭게 이어지는 수많은 포물선들은, 즉 나아가는 과정 중에 있으며 변화의 이미지가 아닐 수 없다. 물과 웅덩이, 구름과 안개, 이끼와 나무, 조금 더 짙고 푸르러진 하늘과 녹음의 색&hellip; 형체가 바뀌어도 만물은 파노라마처럼 연결되어 있고 모두 순환의 고리에 있음이 감지된다. &lsquo;빛에 적셔진 곳은 어디서 끝나며 어디서 빛이 오므라들기 시작하는가?&rsquo; 철학자 프랑수아 줄리앙에 의하면, 모든 것이 한순간도 같지 않고 우리 의식에 포착되지 않더라도 조용히 변화하듯이, 삶 또한 단절이 없으며 &lsquo;고요한 변화&rsquo;이다. 화면 속 리드미컬하게 이어지는 색과 붓질의 흐름은 새로운 리듬으로 연결되어 또다른 의미와 가능성을 열며, 이렇게 서로의 원인이자 결과가 되어 끝없이 순환하는 연결 구조는 미적 경험은 물론 자연과 삶의 본질을 아우르며 질문과 성찰의 기회를 준다. 고단한 인간세상을 떠나 도달하고자 하는 귀의처로서의 자연일 수도 있지만, 결국 그가 자연 풍경을 통해 이르는 곳이 다시 인간과 삶의 세계임은 이상할 것이 없다. 우리 역시 자연의 일부임에, 모든 생겨남이 그 자체로 연속성에서 비롯되기 때문이 아닌가?</p><!-- /wp:paragraph --><!-- wp:paragraph --> <p><br />전희경의 심상 풍경은 시각현상에 기반한 서양식 풍경화와는 거리가 있으며, 자연경을 빌려 무언가 가치 있는 것을 시각적으로 서술하는 동아시아의 산수화와도 다르다. 자연의 장소라는 물질성에 대한 체험으로부터 마치 바람, 안개, 하늘의 푸름을 만지고 듣는 듯 시각은 물론 촉각과 후각을 통한 몸 체험에 이르기까지 비가시적 현존을 시각화하는 그의 작업은, 모든 예술이 그러하지만, 우리를 시적으로 사유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여기에는 어떤 인공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세계의 근원적인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에 대한 본능적인 인식이 내재한다. 전희경의 작업이 주목되는 이유이다. 그의 작업은 풍경과 산수, 현실과 비현실, 현상과 감각, 과거와 현재 그 사이 어디쯤 위치해 있다. 분명한 것은 그 사이에서 고뇌하며 작가가 지향하는 세계, 내외부의 변화에 대처하여 열림과 닫힘의 경계를 넘나드는 유연한 정신이 있다는 것이다. 전시에서 누구나 무의식 속에 하나쯤은 갖고 있는, 닿고자 하는, 존재하지 않지만 한번은 갔다 온 듯 익숙한, 그립고 편안한, 별이 쏟아지는 그런 곳&hellip; 이러한 것들과의 모종의 마주침, 우리는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p><!-- /wp:paragraph --><!-- wp:paragraph --> <p>글│강주연 Gallery JJ Director)</p> <p><br /></p><!-- /wp:paragraph --><!-- wp:paragraph --> <p>[작가 소개]<br /> <strong>전희경. Jeon Heekyoung</strong> (b.1981)<br />홍익대학교 회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2006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20차례의 개인전과 150회 이상의 국내외 그룹전에 꾸준히 참여하면서 탄탄하고 독자적인 조형언어를 구축해왔다. 2013년 겸재정선미술관 &lsquo;내일의 작가&rsquo; 대상을 수상했고, 분다눈미술관(호주), 관두미술관(대만), 타이동미술관(대만)을 비롯하여 최근의 예술곶_산양(제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국내외 레지던스에 참여하는 등 국제무대로 나아가며 전시를 활발하게 이어나가고 있다. 또한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겸재정선미술관 등 다수의 미술관 및 공공기관을 비롯하여 작품의 소장처가 넓어지고 있다. 전희경은 빛, 바람, 기후 등 유기적 자연 요소로부터 해체된 형태들과 색채의 흐름이 뒤섞인 세계를 이끌어내고 추상적 회화로 표현한다. 그는 회화가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작품인 동시에 물리적 공간에서 경험되는 회화 설치를 통해 여러 점의 회화가 연속하는 구조 사이에서 내러티브를 획득하는 방식을 모색한다.</p><!-- /wp:paragraph -->

종료

2024년 8월 23일 - 2024년 10월 5일

스캇 리더 Scott Reeder: Bread & Butter

<!-- wp:paragraph --> <p><em>&ldquo;단지 하나씩 계속 쌓으면 뭔가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자신감이나 믿음이 있어야 한다. 나는 가장 흥미로운 그림은 수수께끼 같은 그림이라고 생각한다.&rdquo;&nbsp;</em> ―스캇 리더</p><!-- /wp:paragraph --><!-- wp:paragraph --> <p>갤러리JJ는 미국의 시카고와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스캇 리더(Scott Reeder, 1970)의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scott reeder:="" bread="" butter="">를 개최한다. 스캇 리더는 회화를 중심으로 조각, 영화, 퍼포먼스 등 다양한 형식과 매체를 넘나들며, 주로 회화의 역사와 문화를 참조한 유머와 패러디 방식의 작업들로 잘 알려져 있다. 이번 전시는 최신작을 중심으로 그의 다양한 작업 시리즈를 연결하여 한국 관객에게는 처음으로 리더의 독창적인 작업세계와 그 면모를 소개하는 자리로, 20점의 &lsquo;이미지 페인팅&rsquo;과 &lsquo;파스타 회화&rsquo; 시리즈, 텍스트에 기반한 &lsquo;워드 페인팅&rsquo;과 &lsquo;리스트 페인팅&rsquo;으로 구성된다. 언어 기호와 시각, 전통과 새로움, 고급과 통속 등을 섞어낸 독특한 해학적인 방식과 사유로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리더의 작업은 우리에게 익숙한 문화예술의 관습이나 위계, 선입견으로 가득한 삶의 순간들을 낯설게 혹은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방대한 미술사적 레퍼런스를 차치하더라도 뛰어난 색채 감각과 쿨한 유머 감각의 세계는 무척 매력적이며, 작품 감상을 즐겁게 만든다.</scott></p><!-- /wp:paragraph --><!-- wp:paragraph --> <p>야자수 나무 아래 선탠과 수영을 즐기는 버터와 식빵 커플, 하필 뜨거운 열대에 드러누운 아이스크림이나 버터의 터무니없는 조합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에 간결하게 만화 같은 평면적 구성과 파스텔 톤의 독특한 컬러 조합을 더한 화면은 유쾌한 상상력의 무대가 된다. 때로 작품 &lt;핑크 스튜디오&gt;(2024)처럼 마티스나 피카소의 &lsquo;미술가와 모델&rsquo;, &lsquo;스튜디오&rsquo; 같이 잘 알려진 주제의 이미지가 엿보이기도 한다. 작업은 소위 순수미술과 대중미술의 이슈가 읽히기도 하며, 종종 미묘한 긴장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면서 동시대미술의 다양한 컨텍스트로 바라보게 한다. 리더는 유머를 통해 회화 역사에 도전하고 삶의 모순 같은 진지한 주제를 다룬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하는 의인화된 빵과 버터, 바나나 등 일상 사물들의 유머러스하고 아이러니한 광경을 담은 &lsquo;이미지 페인팅&rsquo; 시리즈는 2007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온 대표적인 시리즈로, 작가는 여러가지 작품 연작을 다년간에 걸쳐 동시에 진행하고 있으며, 동일한 주제를 수많은 버전으로 반복하여 작업한다.</p><!-- /wp:paragraph --><!-- wp:paragraph --> <p>리더는 2010년 즈음, 텍스트 기반의 회화와 프로세스 회화의 패러디 작품으로 처음 알려지면서 각종 미술관과 컬렉터들의 관심을 끌었다. 살펴보면, 정물화 전통을 바탕으로 실내 인테리어, 빵과 버터, 과일 및 다양한 일상용품 같은 무생물에 감정 표현과 사회적 관계를 투영하는 &lsquo;이미지 페인팅&rsquo; 시리즈(2007년~), 잭슨 폴록의 액션과 견주어 우리가 알고 있는 추상표현주의 또는 추상회화의 미술 양식과 회화라는 매체의 진지함을 위트있게 비틀어 재고하는 &lsquo;파스타 회화&rsquo; 시리즈, &lsquo;단어 회화&rsquo; 시리즈가 나오고(2010년~), 비교적 최근에 좀더 집중적으로 작업하는 &lsquo;세라믹 부조 회화&rsquo; 및 세라믹 조각 작업은 세라믹으로 제작, 복제된 일상 속 흔한 사물들을 늘어놓아 마치 색인처럼 보여주면서 현대인의 소비 행태, 욕망과 악습을 성찰하게 한다(2016년~). 한편 즉흥성을 기반으로 한 SF영화 &lt;문 더스트 Moon Dust&gt;(2014년), 아이러니를 테마로 한 아트페어인 &lt;다크 페어 Dark Fair&gt;(2008년) 같은 이벤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등 자신의 작업세계를 다양한 형식으로 보여주었다.</p><!-- /wp:paragraph --><!-- wp:paragraph --> <p>이번 전시 제목인 &lsquo;빵과 버터&rsquo;는 그의 작품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작품 제목으로, 단어 자체의 의미와 더불어 삶에서 필수적인 &lsquo;생계&rsquo;라는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리더가 늘 그래왔듯이, 이 역시 미리 써둔 단어 리스트에서 랜덤하게 고른 단어의 조합이다. 그는 먼저 단어들을 고른 후 이미지를 그리기 시작하며, 지금까지 반복하여 조금씩의 차이를 두고 그때그때 떠오르는 이미지를 그려왔다. 이번 &lsquo;이미지 페인팅&rsquo; 신작들은 예전보다 마치 수채화처럼 색감이 엷고 투명하며 붓질이 더 드러난다. 주인공으로 야채가 등장하고, 캐릭터에 움직임이 더해지기도 한다.</p><!-- /wp:paragraph --><!-- wp:paragraph --> <p>I. &lsquo;유머는 그림의 필수 요소&rsquo;</p><!-- /wp:paragraph --><!-- wp:paragraph --> <p><em>&ldquo;그것이 웃기든 웃기지 않든, 나는 극도의 환원과 절제, 담담한 유머를 통해 작품에서 간단명료한 것을 추구한다.&rdquo;</em> &nbsp;―스캇 리더<em></em></p><!-- /wp:paragraph --><!-- wp:paragraph --> <p>사적 공간을 몰래 엿보는 바나나는 관음증 환자인가. 아이스크림은 열대에서 휴식은 커녕 살아 남을 수 있을까. 테라피가 필요한 바나나, 담배를 피거나 술에 취한 화분 속 꽃을 힘들게 하는 세상살이의 사연이 궁금하고, 녹아 내리면서도 계단을 힘겹게 오르는 시지프스 아이스크림은 왠지 공감이 간다. 의인화된 사물들의 아이러니한 광경은 웃음을 자아내는 동시에 궁금증으로 집중하게 만든다. 그저 무덤덤하게 그려진 사물 너머로 차이는 있지만 사람들은 으레 자신의 감정을 투영하게 마련이다. 일상에서 그저 사물일 뿐인 것들에 특별한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고 감정을 투사하는 일의 허황됨을 비튼 것일 수도 있다. 혹은 캐릭터들 사이에 놓인 남성과 여성, 관음증, 보는 자와 보이는 자의 긴장감이나 권력 관계를 읽을 수도 있다. 이러한 구상 회화와 대량생산된 일상용품을 본뜬 미니어처 오브제들, 생 파스타와 익힌 파스타를 흩뿌려 추상회화에 가한 신랄한 유머까지, 작업은 전반에 걸쳐 관객에게 유머로 농담을 걸어오고 수수께끼를 던지는 듯하다.</p><!-- /wp:paragraph --><!-- wp:paragraph --> <p>일반적으로 문화예술계에 다양한 유머코드가 등장하는 이유는, 암울한 상황을 극복하게 하는 점 외에도 특정 대상을 전혀 다른 관점으로 인식할 수 있는 &lsquo;발상의 전환&rsquo;을 유도하는 점을 꼽는다. 리더는 &lsquo;유머는 관객의 초기 참여를 유도하는 큰 장치&rsquo;라고 말한다. 관객은 웃다 보면 어느새 단순한 관찰자가 아닌 농담의 공모자가 된다. 또한 예술이 가질 수 있는 사회적 소리―가치나 계급 구조 등에 대한 본질적 의심 같은 것들―를 유머를 통해 우회적으로 증폭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따르면 유머는 좌절하지 않으며, 반항적이다. 들여다보면, 리더의 작품은 진지한 예술, 통념, 엘리트주의를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가볍게 접근하고 때로는 뒤집는 것을 알 수 있다. 미래 시대 달의 리조트를 배경으로 그림 같은 세트 속에서 벌어지는 코미디 풍의 영화는 디스토피아적이며, 사회적 계급 구조와 미국 도시들에 대한 역설적 내레이션이기도 하다. &lsquo;밀워키 인터내셔널&rsquo; 그룹을 조직하여 개최한 기발한 &lsquo;다크페어&rsquo;(자연광과 조명을 사용하지 않는 미니 아트페어) 같은 공공 프로젝트와 더불어 이러한 유머 코드를 이해함에 있어서, 자본주의와 미술의 중심지인 뉴욕과 대비하여 번성했던 경제가 급속도로 기운 디트로이트의 상황, 곧 작가가 자란 미국 중부 지역의 문화적 성격은 고려해야 할 요소일 것이다.</p><!-- /wp:paragraph --><!-- wp:paragraph --> <p>작가는 일상을 관찰하고 정상이라고 여겨지는 현실 속의 모든 것들에 대해 의문을 갖는다는 점에서 &lsquo;미중서부의 마그리트&rsquo;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데, 실지로 그는 특히 르네 마그리트의 짧았던 &lsquo;바슈 vache&rsquo; 시기의 야수주의를 풍자하는 역설적인 작업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통념을 벗어나는 뜻밖의 반전은 평범한 순간을 기묘하게 부조리함으로 나타내 보인다. 유머에 의한 전복은 제프 쿤스가 말하듯, 현대미술의 한 방법이다.</p><!-- /wp:paragraph --><!-- wp:paragraph --> <p>II. 언어, 우연, 그리고 &lsquo;회화&rsquo;</p><!-- /wp:paragraph --><!-- wp:paragraph --> <p><em>&ldquo;그리기 위해서는 알지 못하는 길로 가야 한다. 예술은 모퉁이를 도는 것과 같다; 모퉁이를 돌기 전까지는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다.&rdquo;</em> ―밀턴 에브리 Milton Avery</p><!-- /wp:paragraph --><!-- wp:paragraph --> <p>리더는 자신이 선호하는 모티프들―버터와 빵, 바나나, 배, 아이스크림 등―의 레퍼토리를 연속으로 개발하고 변주를 거듭한다. 이러한 반복 작업은 하나의 대상을 다양하게 확장해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작품에 나오는 캐릭터와 이미지의 발견은 그가 생각날때마다 미리 써둔 텍스트, 단어에서 비롯된다. 작가의 디트로이트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 단어 리스트를 쓴(혹은 그린) 큰 캔버스들이 벽에 걸려있었다. 이 &lsquo;리스트 페인팅&rsquo;과 함께 텍스트 작업에는 단어 조합과 색채로 언어 유희를 보여주는 &lsquo;단어 회화&rsquo;, &lsquo;네온&rsquo; 작업도 있다. 새로운 작품을 시작할 때 그는 다양한 아이디어 창고 격인 리스트가 적힌 노트에 다트를 던지는 등 무작위로 단어를 선택하여 이미지를 떠올리고 실행한다. 제목이 먼저 정해지고 이미지가 그다음에 오는 식이다. 곧 리더의 모든 작업은 언어에서 시작하며, 언어와 이미지 사이의 놀이가 작업의 주요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기표와 기의는 사람의 기호적 해석 작용에 따라 계속하여 다른 의미의 기호를 생성하게 된다. 맥락과 의미의 주관성을 강조하는 그는 관련 없는 단어나 이미지 조각을 결합하여 예상치 못한 서사나 내용, 새롭게 혼합된 의미를 생성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무작위적인 언어 추출이나 파스타 면을 바닥에 흩뿌리는 작업은 마치 과거에 한스 아르프가 종이 조각을 바닥에 떨어뜨려 우연히 배열된 상태로 작품을 완성하는 것처럼 우연성을 모티브로 한다. 그는 가장 좋은 아이디어는 우연히 도출되며, 존 케이지, 다다이스트들의 모든 우연성에 대한 탐구가 흥미롭다고 말한다.</p><!-- /wp:paragraph --><!-- wp:paragraph --> <p>이렇게 기존 것에 대한 탐구와 실험으로 리더의 작업에는 회화 전통에서 어느덧 클리셰로 자리잡은 다양한 근현대미술사의 상징적 레퍼런스가 광범위하게 내재한다. 곧 그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특징 중 하나는 회화, 혹은 회화의 역사를 활용하는 점이다. 필립 거스통의 만화 같은 대상, 마티스의 붉은 스튜디오, 호크니의 수영장, 만 레이의 레이요그래프(rayograph)처럼 보이기도 하는 빛나는 듯한 추상 이미지는 실은 스파게티 면발의 실루엣으로, 잭슨 폴록의 올-오버 페인팅에 대한 패러디이며 더 나아가 페인트 스프레이를 사용하여 전통적인 붓 사용을 거부하였다. 이러한 작업은 추상과 재현, 고급과 저급 등 대립되는 이분법적인 범주 자체를 소재로 예술사적 아이콘을 부조리한 패러디로 다루면서, 한 켠에는 모더니즘이 매몰되어 있던 이성과 질서의 거대서사를 회의했던 현대미술 대가들을 향한 신뢰의 태도가 있다. 특히 과감한 유머와 풍자적인 오브제 설치 및 이미지를 넘나들던 마틴 키펜베르거, 이미지와 텍스트 간의 관계나 우리가 받아들이는 이미지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회화의 수단에 제한을 두지 않은 포괄적인 작업 방식을 가진 시그마 폴케, 군더더기가 빠진 간결한 형태와 환상적인 색채의 밀턴 에브리 등 느슨하게는 독일의 신표현주의나 자국의 &lsquo;배드 페인팅 bad painting&rsquo; 기조의 작가들이다. 리더는 이들의 궤적을 잇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전통회화의 틀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부단한 시도를 거듭한다. 회화사에서 답습된 것들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리더의 작업은 그래서 좀더 복잡한 층위의 의미를 함유하며, 달콤한 색상과 유치해보이는 주제, 악동 같은 유머 등 자신만의 행보로 현대회화에 새로운 담론을 제기한다.</p><!-- /wp:paragraph --><!-- wp:paragraph --> <p>글│강주연 Gallery JJ Director</p><!-- /wp:paragraph --><!-- wp:paragraph --> <p>◎ 문의&nbsp;&nbsp; 02-322-3979 / <a href="mailto:galleryjjinfo@gmail.com">galleryjjinfo@gmail.com</a></p><!-- /wp:paragraph --><!-- wp:paragraph --> <p><br /></p><!-- /wp:paragraph --><!-- wp:paragraph --> <p>[작가 소개]</p><!-- /wp:paragraph --><!-- wp:paragraph --> <p><strong>스캇 리더 Scott Reeder (b.1970)</strong><strong></strong></p><!-- /wp:paragraph --><!-- wp:paragraph --> <p>작가 스캇 리더는 1970년 미국 미시건주에서 태어나 1994년 아이오와 주립대학교 회화과에서 학사 학위를, 1998년 일리노이대학교 대학원 시카고캠퍼스 회화과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시카고미술대학(SAIC)의 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국 시카고와 뉴욕을 기반으로, 2011년 시카고현대미술관의 개인전을 비롯하여 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 벨기에, 이탈리아 등 세계 각국에서 활발하게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한편 그의 작품은 워싱턴의 허쉬혼미술관, 시카고현대미술관 등 수많은 주요 미술관들에 소장되어 있다. 작업의 형식과 내용 면에서 언어 기호와 시각, 전통과 새로움, 고급과 통속적인 것 등을 섞어낸 독특한 해학적인 방식과 사유로 각종 미술관과 컬렉터들의 주목을 이끌어냈다. 그의 작업은 회화의 역사, 패러디와 유머를 통한 예술 및 문화 비판에 기반하여 역설적으로 현실의 허황됨과 모순을 드러낸다.</p><!-- /wp:paragraph -->

종료

2024년 11월 15일 - 2024년 12월 28일

서용선: 모건 애비뉴 300 | Suh Yongsun: 300 Morgan Avenue

<!-- wp:paragraph --> <p><br /></p><!-- /wp:paragraph --><!-- wp:paragraph --> <p>&ldquo;<em>세상이라는 것은 어제나 내일이나 항상 우리 스스로의 이미지를 보게 할 뿐&hellip;</em>&rdquo; ―보들레르, 『악의 꽃』, 1857</p><!-- /wp:paragraph --><!-- wp:paragraph --> <p>갤러리JJ는 &lsquo;그리기&rsquo;를 중심으로 &lsquo;인간&rsquo; 탐구를 실천해오고 있는 작가 서용선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 《모건 애비뉴 300》은 갤러리JJ에서 열리는 서용선의 5번째 전시로, 작가가 지금까지 해온 여러 작업들 가운데 뉴욕에서 실행했던 작업에 초점을 맞춘다. 그는 1992년 뉴욕을 처음 방문한 이후부터 올해 여름까지 약 25 차례 꾸준히 드나들며 짧게는 2개월 내지 길게는 6개월까지 머물며 작업했다. 현재 작가의 &lsquo;도시&rsquo; 그림 가운데 뉴욕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뉴욕이라는 타국의 공간과 삶에 있어서 어느덧 체험이 누적되고 작가의 새로운 시선은 섬세함이 더해졌다. 전시는 그가 관찰하고 몸담아 감각한 현대도시의 삶과 회화적 공간의 다양한 표현 방식, 그 확장성에 주목하면서 과연 보편적 지구촌 시대의 삶의 조건은 무엇인지, 이 도시가 서용선의 예술 세계에 미친 영향 등을 들여다보고자 한다.</p><!-- /wp:paragraph --><!-- wp:paragraph --> <p>전시 제목인 &lsquo;모건 애비뉴 300&rsquo;은 최근 여름에 거주했던 브루클린에 위치한 뉴욕 스튜디오의 주소이다. 전시는 30여년 사이의 뉴욕행 가운데 가장 최근인 2024년 &lsquo;도시&rsquo; 작업을 중심으로, 초기의 일련의 작품들도 함께 구성하여 뉴욕 작업의 맥락을 이어간다. 5미터가 넘는 길이의 대작 &lt;34th St.&gt;(2017-2024)에서부터 종이 드로잉과 일기를 비롯한 자료들이 함께 전시된다. 화려한 도시의 겉모습을 제치고 그가 집요하게 반복 제시하는 거리, 카페, 지하철의 장면에서 익명화된 도시민의 어색하고 불안정한 모습은 군중 속에서 더욱 심화된다. 그것은 고독과 소외로 내몰린 도시인의 내면이 드러나는 것일 수 있다. 특히 올여름의 작업 역시 자신이 자주 이용했던 근처 &lt;메트로폴리탄+부쉬윅 역&gt;(2024) 작품을 비롯하여 지하철 그림이 절반을 차지한다. 대중교통과 공공장소라는 익숙한 일상을 이토록 낯설게 보여주는 서용선 특유의 도시 오디세이다. 정치와 경제 발전 과정에서 미국 의존도와 함께 가장 닮은 나라가 한국이라고 할 수 있으니, 월가의 성공과 더불어 소비 자본주의의 대표 도시인 뉴욕의 삶의 방식 또한 쉬이 공감이 간다. 전시에서 한 작가의 예리한 시선과 감각을 통하여 나의 모습을 만나고 우리가 속한 사회 시스템, 이상과 현실의 간극, 삶을 마주하는 일은 무척 진지하고도 흥미롭다.</p><!-- /wp:paragraph --><!-- wp:paragraph --> <p><em>&ldquo;창 밖 여기저기서 대형트럭의 엔진 시동 소리가 들린다. 새벽공기를 가르는 차량의 속도감 있는 공기를 가로지르는 소리가 들리고, 브루클린의 창고 먼지를 머금은 공기가 실내로 밀려들어온다.&rdquo;</em> ―뉴욕 일기 2024</p><!-- /wp:paragraph --><!-- wp:paragraph --> <p>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는 오랜 기간 경기도 양평 작업실 외에도 대도시인 베를린과 멜버른, 시드니, 베이징, 파리, 시애틀 등 레지던시에 참가하거나 단기 작업실을 마련하여 몇 개월씩 머물며 작업해왔고 최근으로 올수록 뉴욕에서의 시간이 늘어났다. 이러한 작가의 행보는 노마드적 취미나 주변에 널린 미디어 속 매끈한 이미지를 통해서 가능한 일이 아니라 결국 지구촌 곳곳 삶의 세계 속으로 직접 들어가 목격하고 몸으로 체험하는 일이기에, 인간을 궁금해하고 도시에서 현대 삶의 특징을 찾아나가는 작가로서는 숙명과 같은 일처럼 보인다.</p><!-- /wp:paragraph --><!-- wp:paragraph --> <p>서용선의 작업은 특유의 표현적 터치와 함께 압축적인 구조와 질서의 강렬한 화면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작업의 모든 시각적 형상은 &lsquo;회화&rsquo; 매체에 대한 본질적인 탐구와 함께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관심으로 함축될 수 있으며 이는 곧 현대인, 인간의 삶을 조건 짓는 &lsquo;사회&rsquo;와 관계를 맺으면서 지금까지 도시와 역사, 인물과 자화상, 자연풍경과 신화 등으로 나타난다. 노산군과 김시습, 한국전쟁 등의 역사를 거듭 재소환하여 사건에 휘말리고 잊혀진 개인을 상정하고, 인간의 원형을 찾아 자화상은 물론 소나무 그림을 비롯한 풍경, 신화를 그리고 있다. 오랫동안 드나들었던 폐광도시 철암(2001년~)이나 최근 농민항쟁의 장소인 신안 암태도 등 역사적 배경이 녹아든 진솔한 삶의 현장에 거침없이 뛰어든 행보는 물론 특히 현대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도시 혹은 도시인의 심리상태, 지구촌 사람들이 살아가는 본모습을 찾아서 &lsquo;도시 그리기&rsquo;를 오랜 기간 동안 실행해오고 있다.</p><!-- /wp:paragraph --><!-- wp:paragraph --> <p>그의 작업에는 사람과 그 사람이 몸담은 상황이 함께 놓인다. 곧 역사의 주변부 인물들과 현재 작가 자신이 대면하는 현대도시 상황에 처해진 무표정한 인간 존재, 비동시적이지만 겹쳐져 보이는 이들의 부조리한 삶의 현장에 내재한 메커니즘 혹은 보이지 않는 힘에 주목한다. 이러한 것들은 작업에서 비현실적인 평면 즉 힘찬 직선, 왜곡된 색채와 형상이 빚어내는 불가사의한 에너지와 긴장감으로 나타난다. 작가의 오랜 관심사인 인간의 형상과 서술적 사실의 표현은 이집트 벽화와 고구려 벽화와 같은 원초적 그리기에 대한 생각과 1980년대 당시 새로운 형상에 대한 관심을 거치면서, 재현과 추상을 오가는 표현 방법으로 &lsquo;현대라는 시대적 특성을 지닌 인간의 형상&rsquo;, 역사 인식에 대한 고민을 &lsquo;표현&rsquo;하기에 이른다. 그는 사건의 흔적과 기억을 시각적으로 재현함에 있어서, 도시 시리즈부터 역사 시리즈(1986년~) 등 십수 년 전에 시작하여 현재까지도 대상을 끊임없는 관찰과 확인으로 재해석하고 판단을 유보한 채 지속적으로 제시한다.</p><!-- /wp:paragraph --><!-- wp:paragraph --> <p>현재는 곧 미래의 역사이자, 지나간 현상과 시간의 흔적이다. 작가에게 도시는 현재의 역사로, 도시 그림은 역사 그림과 마찬가지다. 현대라는 시대 변화에 따른 삶의 형태를 쫓아 도시 그림이 본격적으로 나오게 된 것은 작가가 화단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1984년 무렵으로, 서울에서 점차 세계의 다른 대도시로 확장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사실 고대도시부터 도시의 역사는 인류사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도시는 모든 역사적 삶의 양식을 담은 공간이다. 서용선의 도시 그림, 뉴욕행은 이러한 맥락에서 작업들 상호 연장선에서 다양하게 읽혀진다.</p><!-- /wp:paragraph --><!-- wp:paragraph --> <p><em>&ldquo;내가 보았던 스타벅스 커피집의 입구와 노래하는 남자, 지하철 사람들은 일상의 모습으로,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증명하고 서로의 기억을 그 사실성을 비교하게 만들 것으로 추측된다. 그것은 우리들의 인식 과정을 형태와 물질감으로 들여다보게 만들며 또한 붓으로 비빈 행위의 축적으로, 이러한 사람들의 몸짓을 통해 이 시대 보편적 행위를 확인하게 된다. 또한 이 그림들은 세계 속 한 장면으로 의미를 갖기도 한다.&rdquo; </em>―서용선 2023</p><!-- /wp:paragraph --><!-- wp:paragraph --> <p><strong>뉴욕</strong></p><!-- /wp:paragraph --><!-- wp:paragraph --> <p><em>&ldquo;브로드웨이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오?</em><em> &middot;&middot;&middot; </em><em>난 중심지로 가고 싶소!&rdquo;</em> ―존 더스패서스, 『맨해튼 트랜스퍼』, 1925</p><!-- /wp:paragraph --><!-- wp:paragraph --> <p>작업실 창문에서 바라본 거리 전경, 록펠러센터의 지하 공공장소와 수많은 지하철 그림들, 그 안에는 각자의 휴대폰을 들여다보거나 주고받는 시선 없이 무표정한 사람들이 있다. 화면에는 예전의 긴장감이 가득한 짙은 갈색과 어두운 빨강 대신 좀더 밝고 투명한 붉은 색이 들어섰다. 시드니와 멜버른의 화사한 카페의 공기, 녹색빛 베를린에 비해 뉴욕은 늘 거친 선이 난무하는 어두운 갈색과 회색빛 도시의 표정이었다면 이제 좀 더 밝은 색깔이다. 뉴욕에서 점차 느끼는 작가 개인의 심리적 안정감에서인지 모른다. 작품 &lt;메이시스&gt;(2022, 2024)에서 빨간별 로고와 춤추는 여성을 화면에서 크게 부각하듯이 작가는 나름의 독특한 시점을 담아 이를 부각하여 표현하는 방식으로 구도와 색상을 결정한다. 이 작품은 각종 기념일에 백화점 문 앞에서 벌어지는 행사를 그린 것으로 소비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빨간별 로고가 익숙한 메이시스백화점은 19세기에 설립된 미국의 가장 오래된 국민 백화점 같은 곳으로 500여개의 매장과 대중적인 초대형 쇼핑공간을 자랑한다.</p><!-- /wp:paragraph --><!-- wp:paragraph --> <p>뉴욕은 수많은 미술관과 갤러리를 비롯하여 예술과 문화의 도시인 동시에 화려한 경제적 부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 도시로, 도시적 세련미로 대변되는 뉴요커와 초고층 빌딩들, 트렌디한 감각의 레스토랑과 하이엔드 브랜드로 볼거리가 가득하다. 익숙한 환경을 벗어난 여느 대도시에서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대체로 그는 가까운 카페나 맨해튼을 오가면서 자신의 주변을 탐색하고 관찰한다. 가령 고급 레스토랑보다는 던킨도너츠와 스타벅스처럼 대중의 일상이 되어버린 카페, 거리, 저렴하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대중교통 공간이다. 자신의 일상 테두리 범위로 한정될 수 있는 점도 있지만, 도시의 화려함에도 애초에 그의 시선은 하루하루를 그저 바삐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일상의 시민들, 후기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느라 비본질적 삶에 내몰린 사람들로 향해 있었다. 그것은 고도의 자본주의 시장 시스템 하의 소외와 파편화된 현실의 노출과 관련한다.</p><!-- /wp:paragraph --><!-- wp:paragraph --> <p>제2차세계대전 이후 현대미술의 메카로 우뚝 선 도시인 만큼 늘 트렌디한 전시가 열리고, 서양미술사를 통째로 갖다 놓은 듯 우리에게 친숙한 작품들이 가득한 점에서 뉴욕은 매력 있는 도시임에 틀림없다. 작가는 거리에서 지켜본 백화점 행사에서는 물론 이러한 엄청난 규모의 미술관과 예술품을 향유하는 문화적 현상 뒤편에 거대하게 움직이는 자본의 힘의 구조를 본다. 작품들은 도시의 건축 경관 속 통제와 강요로 도시공간을 점령하고 있는 각종 기호들을 보여주고, 거리에서 마주칠 수밖에 없는 체이스은행이나 ATM 기계 등 각종 사인보드가 도시 자본화의 지표임을 상기시킨다. 그는 일상에서 마주치는 도시의 기호들과 익명의 사람들에게서 호기심을 느끼고 특히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장소 이동과 현대사회의 속도를 생각한다.</p><!-- /wp:paragraph --><!-- wp:paragraph --> <p><strong>도시</strong></p><!-- /wp:paragraph --><!-- wp:paragraph --> <p>뉴욕이 작가의 관심을 먼저 끌었던 점은 도시 집중 현상, 고도로 발달한 문화 현상과 다양성에 있다. 그에게 이 도시는 그 어느 곳보다도 현대인의 욕망, 새로운 기술과 에너지가 몰리는 현상을 시각적으로 확연히 드러나는 장소다. 현대사회에 이르러 발달한 건축술과 과학기술, 대중교통을 포함하여 현대의 특징적 현상이 집적된 도시로 사실 뉴욕만 한 곳이 없다. 도시라는 거대한 대상은 인간의 욕망으로 탄생한, 영원한 유토피아적 열망의 재현으로, 이제 온전한 대상이기보다 메를로 퐁티가 말한 자연이 그러하듯, 우리가 몸담은 지반인 듯하다. 소멸되는 도시가 있는가 하면 인류는 다시 혁신기술로 무장한 최첨단의 미래도시를 꿈꾼다. 자연과 결별한 현대 도시는 오늘날 우리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며, 도시의 본질은 그 안에 사는 사람들로 설명될 수밖에 없다.</p><!-- /wp:paragraph --><!-- wp:paragraph --> <p><em>&ldquo;국가의 경계는 희미해지고 그것을 관리하는 권력만이 노출되고 있다. 우리의 눈은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고 새로운 도시를 마주한다. </em><em>&middot;&middot;&middot; 그림은 언제나 새로운 생각들이 만들어내는 물건들이다.&rdquo;</em> ―서용선 2017</p><!-- /wp:paragraph --><!-- wp:paragraph --> <p>근대로 이동하면서 발생하는 도시화의 형성과 팽창에 따른 여러가지 새로운 양상들, 그 과정에서 변해가는 삶의 형태가 있다. 일찍이 보들레르는 도시를 대상으로 새로운 삶에 대한 특정한 태도를 현대성(Modernity)으로 지칭했고 이후 벤야민에게는 현대라는 시대가 그 얼굴을 드러내는 곳이 바로 메트로폴리스였다. 현대라는 용어는 전통적인 삶의 방식과의 단절이 가져온 삶에 대한 새로운 방식 또는 패러다임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작가는 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급격히 변해가는 서울의 도시화를 직접 체험하면서 &lsquo;도시&rsquo;를 현대의 가장 큰 특징이자 기호로 보았고, 이를 작업의 대상으로 삼아 현대사회의 문제의식 즉, 도시를 일구어 나가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흔적과 양상들을 표현하고자 했다. 1990년대 서울의 그림들은 작가가 주로 출퇴근으로 오가면서 만나는 삼성이나 코카콜라 등의 각종 광고판들과 자동차들로 번잡한 거리와 버스 장면이었다. 당시 역삼역 등의 사인이 있는 역 입구를 그린 정도가 몇 있다면, 뉴욕 그림은 지하철이 도시의 주요 공간이다. 그가 체험한 도시 그림은 현재까지 도시의 역사와 함께 견고한 시스템 속에서 대중이라는 익명성으로 개인들이 처하게 되는 문제나 심리 상태, 당연시 여기는 제도와 관습을 향해 끊임없이 질문한다.</p><!-- /wp:paragraph --><!-- wp:paragraph --> <p><strong>지하철</strong></p><!-- /wp:paragraph --><!-- wp:paragraph --> <p><em>&ldquo;&lt;생각-걷기, 18th Ave&gt;&hellip; 오른쪽 지하철에 앉아있는 노인의 모습이 걷기운동 중 스치는 기억으로 남았다. 허술한 옷차림에 약간 지친 모습&hellip;&rdquo;</em> ―뉴욕 일기 2023</p><!-- /wp:paragraph --><!-- wp:paragraph --> <p>일기에는 &lsquo;걷기운동&rsquo;이라는 표현을 쓸 만큼 뉴욕에서는 걷는다는 것, 걸으며 생각하고 관찰하고 끊임없이 스케치하는 것이 작가의 일상으로, 자동차 대신 뉴욕에서는 주로 걷기와 지하철이 작가의 이동수단이다. 이때 그는 사진을 찍기보다 스케치북을 들고 다니며 현장에서 바로 드로잉을 하여 순간을 생생하게 포착한다. 잘 알려진 서용선의 수많은 지하철 그림은 여러 면에서 독보적이다. 양적인 면에서나 지하철이라는 소재 면에서나 그 평범한 장소가 보여지는 방법과 화면에서 느껴지는 불가사의한 분위기와 강렬함에 기인할 것이다. 작가가 보는 도시 현상 중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지하철이며, 이는 현대도시의 상징이다. 그림에서 뉴욕 지하철은 1995년 작품 &lt;맨해튼의 지하철&gt;을 시작으로 지금까지도 작품 제목부터 정확히 N, L, D, F, 7, 6 라인 그리고 14가, 34가 역, 다운타운행, 퀸즈철로 등 때마다 작가의 이동 수단이었던 각 노선에서의 경험과 분위기로 다양하게 등장한다. 거기에는 시간차를 두고 그 한정된 공간 속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의 다양한 상황과 조건이 있다. 지하 공간 속 상승과 하강의 수직 방향과 이동을 일깨우는 구조, 질주경(dromoscopie)인 듯 차창 밖과 안의 전경이 섞여 들어가는 불확실한 구조, 주목하는 사람과 사물의 움직임에 따라 비현실적인 크기나 색상 및 선의 강약이 단호하다.</p><!-- /wp:paragraph --><!-- wp:paragraph --> <p>작가는 뉴욕의 지하철에서 서울 지하철의 경험과 달리 120년도 더 지난 시기에 지어진 건축물 구조 자체가 노출된 듯한 강철 H빔들이 주는 시각적 충격과 지하 공간을 울리는 육중한 쇳소리의 굉음에서 원초적 느낌을 늘 받는다고 말한다. 그것은 실로 위협적이기까지 하다. 자본의 질주와 지하철의 운동이 대략 상응한다는 말처럼, 국가권력의 통제 계획에 따라 날로 거대해지는 지하철 시스템은 도시 내 혈관처럼 얽혀서 대규모의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나르며 빠르고 효율적으로 노동력을 도시 곳곳에 공급한다. 이동 및 원격 통신수단은 가속을 통해 우리와 사물의 시공간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꿔 놓는다. 불안감은 인체가 따라갈 수 없는 속도와 함께 힘에 대한 본능적 감각이다. 일찍이 20세기 초 사회학자인 게오르그 지멜이 대중교통체계 안에서의 낯선 어색함과 소통 부재를 언급했듯이, 현대인은 지하철에서 새로운 공간 체험을 하게 되었다. 서용선의 지하철 그림들은 움직이는 속도에 밀어 넣은 몸의 감각이나 갇힌 공간에서의 신체 통제, 밀폐된 좁은 공간에 모여 앉은 낯선 타인들과의 상호작용과 무기력한 심리 상태의 재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대도시에서 사람들이 맺는 파편적인 인간관계의 본질에 다름아니다. 작가는 &lsquo;이동하는 공간 속에서 무기력해진 도시민의 모습&rsquo;에서 우리 모두가 도시 자본의 구조 속에서 스스로 한정된 공간을 배정받으며 그것에 만족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고 말한다.</p><!-- /wp:paragraph --><!-- wp:paragraph --> <p>작가는 다른 도시를 방문할 때도 역시 그곳의 주요 교통수단에 주목하여 베를린은 운하와 지하철, 호주 멜버른에서는 트램이나 신호등이 있는 건널목으로, 베이징에서는 버스 특히 자전거를 타는 무리로 나타난다. 일찍이 도쿄를 처음 방문했던 1985년 당시 열차 탑승구를 그린 &lt;도쿄역&gt;, &lt;도쿄전철&gt; 드로잉이 있어, 이에 대한 관심은 생각보다 그 시기가 이르다. &lt;뉴욕, 지하철 입구&gt;(1997, 1998)는 그보다 이른 서울의 &lt;숙대 입구 07:00-09:00&gt;(1991)를 상기시킨다. 지하에서 올라오는 정장 차림의 남자는 당시 작가가 주목했던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출퇴근하는 직장인의 모습으로, 스트라이프 패턴과 가는 철망의 구조와 함께 스산하고 불안정한 도시 모습을 야기한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사람도 보이지 않는 그저 아래로 뚫린 듯한 작은 지하 구멍으로 내려가기가 꺼려졌다면, 이제 대부분의 역사는 밀려드는 이용객들과 때로 음악 퍼포먼스로 분주하게 이동의 노곤함을 잊게 만든다. 이 공간에는 지하의 미로에서 질서를 체계적으로 유도하고 침묵으로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한 수많은 기호들이 모여있다. 작업에는 특히 출구 사인을 자주 볼 수 있다. 권위적인 &lsquo;EXIT&rsquo; 텍스트는 보여지는 순간 오히려 언제든 탈출해야 할 공간임을 스스로 노출하는 기호로도 보인다.</p><!-- /wp:paragraph --><!-- wp:paragraph --> <p>지금까지 서용선의 화면에는 텍스트가 자주 등장한다. 때로 텍스트가 전체 화면을 리드하기도 한다. 작품 &lt;한인타운&gt;(2024)의 마치 한데 모아 놓은 듯한 각종 간판들 모습은 32번가에 있는 실제 건물의 파사드로, 화면 속 한국인 이민자 문화가 함축적으로 들어있는 사인보드는 이곳이 이민의 나라, 멜팅팟임을 각성하게 만드는 시각적 텍스트 역할을 한다. 시간의 층위, 이국에서의 삶의 방식이나 애환이 담긴 단어들이 격자 형태로 화면을 채우는 구도는 시선을 피할 데 없이 우리 앞을 막아선다.</p><!-- /wp:paragraph --><!-- wp:paragraph --> <p>작가는 이러한 이민자의 삶, 특히 할렘이나 브루클린에서 남미와 아프리카인 등 다양한 인종들로부터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나면서 그들을 이해하고, 자신이 관습적으로 가지고 있던 편견을 인식하고 수정해 나가곤 한다. 그는 자신조차도 새로움 속에서 태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작가는 이렇게 결코 &lsquo;객관적일 수 없는&rsquo; 눈앞에 보이는 현실을 계속하여 새로운 그림으로 제시하고 끊임없이 자기 존재를 확인해 나간다.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이질적인 면에 더 눈길이 가면서, 다민족, 다문화의 도시 뉴욕에서 다소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의 도시 작업이 인간에 대한 애틋함이 묵직하게 묻어나며 삶의 세계를 향하여 밀도와 깊이를 더하고 있음은 자명해 보인다. 모든 형이상학적 가치와 결별한 채 일시적이고 우연적인 것, 거대한 매스미디어 환경에 무기력하게 노출되어 살아가는 현실에서, 존재와 사물의 근원, 본질에 대해 질문하고 탐색해 나가는 서용선의 여정은 그래서 더 귀하고 아름답다.</p><!-- /wp:paragraph --><!-- wp:paragraph --> <p><em>&ldquo;인간이 한계 지어서 주어져 있는데, 그 속에서 그걸 극복하려고 애쓰는 것, 그것을 옆에서 보면서 공감하는 것, </em><em>&middot;&middot;&middot; 자신이 하는 일에 집중해서 순수하게 그것을 헤쳐 나가려고 하는 &lsquo;멋&rsquo; 같은 것을 어떻게 그림 속에서 형태로 담느냐 이런 생각을 갖는 편입니다.&rdquo;</em> ―서용선 뉴욕 인터뷰 2024.7.27</p><!-- /wp:paragraph --><!-- wp:paragraph --> <p><br /></p><!-- /wp:paragraph --><!-- wp:paragraph --> <p><br /></p><!-- /wp:paragraph -->

종료

2025년 2월 28일 - 2025년 4월 11일

유현경 You Hyeonkyeong: 나는 피안으로 간다 I retreat to the realm in a timeless horizon

<!-- wp:paragraph --> <p><em>&ldquo;</em><em>나는 시간을 잘 보내고 있나, 나의 깊이는 획득될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한다. </em><em>&middot;&middot;&middot; </em><em>피안으로 가는 것이 이루지 못한 꿈이 될지 아니면 실현이 될지</em>.&rdquo; ―작가노트 2025</p><!-- /wp:paragraph --><!-- wp:paragraph --> <p>무한한 시간 앞에서 짧은 인생은 무에 지나지 않는다. &lsquo;<em>&middot;&middot;&middot;</em>머뭇머뭇하는 사이에<em>&middot;&middot;&middot;</em> 몇 가지 지속적인 것이 있다는.&rsquo; 프리드리히 휠덜린의 시구절은 우리가 보내는 시간에 관하여 시사점을 던진다.<a></a><a> </a>갤러리JJ는 2025년 새해 첫 전시로 회화 작가 유현경의 전시를 개최한다. 독일 베를린을 기반으로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는 유현경(Hyeonkyeong You)은 &lsquo;그리기&rsquo;, 곧 회화적 속성에 충실한 작가로, 주로 사람과 집, 풍경 등을 매개로 자신의 내부에서 발생하는 추상적인 감정이나 생각을 그림으로 풀어낸다. 이번 전시 ≪유현경: 나는 피안으로 간다≫는 풍경을 소재로 하며, 그간 그의 작업을 종종 대변해왔던 인물 작업보다 장소에 대한 정취나 기억과 함께 태곳적 시간을 품은 대자연의 풍광을 통해 보다 확장된 세계를 보여준다. 전시는 여행에서 마주한 광활한 자연환경을 체험하고 그린 <wilderness> 시리즈를 중심으로 베를린을 비롯하여 동서양의 도시와 자연, 문화유적에서의 느낌을 반영한 작품, 자화상 등 15점의 유화 작품으로 구성된다. 시간이 멈춘 듯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은 작가가 욕망하는 자유로운 시간과 공간을 품고, 우리는 시선 너머 또 다른 낯선 세계를 마주하게 될 지도 모른다.</wilderness></p><!-- /wp:paragraph --><!-- wp:paragraph --> <p>전시장의 화면 속 망망한 대지, 화면을 가로 지르는 지평선은 마치 프레임 바깥으로 내달리듯 공간을 연장한다. 그것은 넓은 여백, 몇 안 되는 서너 가지의 색, 붓질과 안료 질감의 미세한 차이 만으로도 척박한 광야 어딘가를 소환한다. 화면은 평론가 정영목이 말했듯이(2020년), 시원하고 간결한 붓질의 추상성이 그림으로 만들어 하나의 조합으로 읽힌다. 여백을 포함하여 전체와 부분이 서로 침투하고 진동하며 유기적으로 얽힌 듯 표현된 화면은 상념을 불러일으키며 오랫동안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p><!-- /wp:paragraph --><!-- wp:paragraph --> <p>유현경의 예술세계는 세계와 나를 관계 맺는 또 하나의 태도를 제시한다. 작업은 작가 자신으로 환원된다. 대상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다루는 작가는 보이는 대상을 이미지로 차용하기보다 실질적으로 대상에 다가가고 접촉하여 내밀한 변화를 포착한다. 그것은 형태를 구축하기보다 해체하며, 단순한 시선을 넘어서 구체성을 생략해버린 채 표현적이면서 추상적인 화면으로 나타난다. 작업은 솔직하고 거침없으며 견고한 구성력을 보인다.</p><!-- /wp:paragraph --><!-- wp:paragraph --> <p>작가는 표정 없는 초기 인물화를 비롯한 거침없이 빠른 붓놀림과 최소한의 형태를 가진 인물화로 그 독창성이 가장 먼저 알려졌고, 그것은 작업에서 꾸준히 많은 비중을 차지해왔다. 대학을 막 졸업하던 작가 초기인 2009년 전시 ≪화가와 모델≫(서울대학교 우석홀)부터 OCI미술관(2011년), 학고재갤러리(2012년)로 이어지면서, &lt;일반인 남성모델&gt;연작을 시작으로 누드화를 포함하여 주변의 평범한 사람을 그린 인물화는 단번에 화단의 비평적 주목을 끌면서 이슈를 불러일으켰다. 인물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작업은 집과 자신이 지나다니는 길 같은 장소의 정취에 관한 기억으로 확장된다. 뉴욕의 두산갤러리(2016년), 스페이스몸미술관(2018년) 전시를 비롯하여, 2020년에 베를린으로 이주 후 최근까지 여주미술관(2024년) 전시에서 거대한 스케일의 추상회화와 텍스트를 사용한 회화를 선보이는 등 활발한 전시 행보와 진전된 작업을 보이고 있다. 방대한 작업량과 더불어 풍부한 해석의 가능성을 입증하듯, 현재 그의 포트폴리오에는 무려 1,000점을 훌쩍 넘기는 작품 사진들이 들어있었다.</p><!-- /wp:paragraph --><!-- wp:paragraph --> <p>작가가 베를린으로 옮긴 지 약 5년이 흘렀고, 그간 낯선 타국의 환경은 자연스럽게 작업의 변화로 이어져 왔다. 화면에는 자연이 많이 들어오고, 예전에 보여주었던 거친 감정은 어느덧 조금은 부드럽고 심지어 강렬한 붓질 가운데 섬세한 선으로 때로는 정제된 느낌마저 주기도 한다. 그는 낯선 이방인으로서 그리고 일상의 산책길에서 만나게 되는 숲과 호수와 같은 자연 속에서, 그동안의 삶에서의 분주함이나 사회적 구조와 관계의 무거움에서 벗어나 한결 한가하고 자유롭게 작업에 몰두한다고 말한다. 곧 자신이 속한 환경에 눈을 돌리고 새로운 세계에 반응하고 있는 자신을 인식하고 있다.</p><!-- /wp:paragraph --><!-- wp:paragraph --> <p>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는 이러한 베를린에서의 자유로운 느낌을 자신이 지향하는 삶에의 의지로 좀더 심화하여 드러내며, 이는 곧 자신이 체험한 척박한 땅, 인적 드문 황무지로 투사된다. 전시의 중심이 되는 <wilderness> 시리즈는 단순한 풍광이기보다 시간으로 달리는 광야와 대지, 시간과 결합한 풍경이다. 문명이 닿지 않은 원초적 풍광은 시간을 느끼게 한다. 문자 그대로 &lsquo;저쪽 언덕&rsquo;이란 뜻의 피안은 각자 다르겠지만 우리가 마음 한 켠에 품고 있는 언젠가 도달해야 할 미래의 장소일지 모른다. 작가에게 그것은 자신이 처한 현실의 제도와 관습으로부터 자유로운, 깊이를 가지는 시간과 공간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것은 혹여 작가로서의 창조적 정신의 자유와 고단한 현실 삶 사이의 모순과 갈등일까?</wilderness></p><!-- /wp:paragraph --><!-- wp:paragraph --> <p>I.</p><!-- /wp:paragraph --><!-- wp:paragraph --> <p>&lsquo;다시 만나는 길&rsquo;, &lsquo;어느 날&rsquo;&hellip; 작품 제목은 어느 특정 지역을 지칭하지 않는다. 때로는 다른 장소가 겹쳐지면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그는 제목을 정하는데 있어서 신중히 오랜 시간 고민하며, 대부분 그것은 마치 자신에게 향하는 독백처럼 내러티브를 부여한다. &lt;다시 만나는 길&gt; 시리즈는 분위기에 매료되어 여러 번 그려진 시안의 대안탑, 한가한 회빛의 성벽길로 이어진 공간을 걸으며 옛것과 현재가 함께 어우러짐이 좋았던 시안의 어느 공간에서의 정취와 기억을 떠올린 이미지다. 작품&lt;샹그릴라로&gt;는 자신이 방문했던 중국 윈난성의 샹그릴라 지역명을 그대로 붙였다. 샹그릴라는 &lsquo;유토피아&rsquo;적인 의미망을 가진다.</p><!-- /wp:paragraph --><!-- wp:paragraph --> <p>작가는 낯선 곳으로의 여행, 머물기를 좋아한다. 충주와 고양, 속초를 비롯하여 취리히, 뉴욕, 아르헨티나, 독일 등 여러 지역의 레지던시 및 작업실을 이동하고 크로아티아, 시칠리아, 중국 등 수많은 장소를 체험해왔다. 이처럼 체험했던 장소와 풍경의 구체적인 정보보다 작가는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떠오르는 생각과 기억을 포착하여 작업한다. 그렇다면 작품에서 보이는 거칠고 빠른 붓놀림과 얼룩, 자신감이 가득한 러프한 제스처의 느낌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인가? 화면을 가로지르는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힘은 또 어떠한가? 내면의 감정들, 그것이 표출되는 방식, 이들은 작가 개인의 감추어진 욕망, 무의식의 발로인가? 같은 제목, 여러 점의 대안탑 그림처럼 비슷한 듯한 그림을 매번 반복하여 그리는 일은 무엇 때문일까?</p><!-- /wp:paragraph --><!-- wp:paragraph --> <p>회화의 본질이란 불빛에 생긴 연인의 그림자를 벽에 그려놓듯이(대플리니우스), 무언가를 그린다는 것은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데리다는 재현은 시각이 아닌 기억에 의존하며 존재가 아닌 부재를 조건으로 한다고 했다. 기억은 곧 시간성의 맥락에 있고 이는 유현경의 작업에서 잘 읽혀진다. 유현경은 &lsquo;눈을 떠 바라보는 풍광도 좋지만, 눈을 감아 그려지는 풍광도 그에 못지 않을 수 있다&rsquo;는 생각을 한다. 그에게 인물이나 풍광과 같은 대상은 회화적 사건의 단초로써 작용한다. 인물을 둘러싼 추상적인 분위기를 그린 것처럼 풍경 그림 역시 구체적인 장소나 풍경 예찬이 아니라 그것은 온 몸으로 직접 느낀, 시간 속에서 떠오르는 마음 속의 풍광이다. 작가는 &lsquo;천천히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것, 생각하지 못한 내밀한 감정들이 그림으로&rsquo; 나오기를 기다린다. 따라서 그것은 장소의 표면 아래 스며 있는 역사와 같은 시간성의 맥락과도 무관하지 않은 감각적 확장이며, 곧 그림은 자신의 무의식이자 반영이다. 마치 자화상을 보듯 자신과 대면하고 응시하며, 대상에의 집착을 버리고 새로운 의미를 빠져나오게 한다. 그는 붓질하는 순간에도 고민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의 빠른 붓질은 오히려 대상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보다 이처럼 오랜 내면의 관찰과 응시를 거쳐 나온 것으로, 무의식과 의식이 교차하는 숙련된 조형 감각으로 이루어진다. 형상을 빌어서 대부분은 붓질과 색이 응축된 감정선을 따라 머리로 인식하기 전에 더 빨리 손이 움직인다.<a></a></p><!-- /wp:paragraph --><!-- wp:paragraph --> <p>&ldquo;<em>당장 눈에 잡히지 않으니 기다려 본다. </em><em>&middot;&middot;&middot; 시간을 기다려 모으는 일 </em><em>&middot;&middot;&middot; 그 속으로 침잠하여 고요해지는 것, 그 안에서 보이는 것들, 침잠할수록 보이는 것은 넓어지기에 나의 세계가 모두 가라앉아 버리는 그 어둠, 밀려오는 그 쓸쓸함 </em><em>&middot;&middot;&middot; </em><em>고통 속으로 들어가는 일, 그것은 언제부터인가 작업이 되었다.</em>&rdquo; ―작가노트 2024</p><!-- /wp:paragraph --><!-- wp:paragraph --> <p>응시는 시선으로 볼 수 없는 것을 열어 보이며, 현실의 균열 속 심연을 들여다보는 일은 이처럼 어둠이나 쓸쓸함, 고통을 동반하는 일이다. 그것은 그의 실존을 증명하는 동시에 자연계의 힘이나 충동이 실제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로서 그림에 어른거린다. 유현경은 회의하고 의심하며 그래서 세계는 끊임없이 부정되고 해체된다. &lsquo;같은 과거를 계속 다르게 반복하고 번복한다.&rsquo;는 작가의 말처럼 지난 것은 늘 현재와 관련하여 다르게 나타나므로, 그는 차이가 나는 반복적 작업으로 끊임없이 스스로를 알아가고 있다. 이는 결코 충족될 수 없는 욕망으로 계속하여 연기될 뿐이다. 그것은 종종 시리즈로, 비슷한 그림으로 전개된다. 작가에게 그림은 스스로가 의식할 수 없고 규제할 수 없는 자신의 내면을 계속 발견하고 확인해 나가는 과정이다.</p><!-- /wp:paragraph --><!-- wp:paragraph --> <p>유현경의 작업에는 여백이 많다. 그림은 이미 작가 자신의 신체, 삶 전반을 통해 세계를 경험한 것, 그래서 자신 안에 잠재되어 있는 수많은 것들을, 들뢰즈의 표현에 의하면, 채우기보다 비워내는 것에 가깝다. 그는 그리기보다 지우기, 남겨두기에 주력하는 듯한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의 언어적 질서와 제도로부터 공백과 결여를 탐닉한다.</p><!-- /wp:paragraph --><!-- wp:paragraph --> <p>II.</p><!-- /wp:paragraph --><!-- wp:paragraph --> <p>돌이켜보면, 이러한 유현경 특유의 작업은 2008년 공모로 모집한 100인의 &lt;초상화 모델&gt; 작업과, 역시 공모로 모집한 낯선 남성 모델과의 여행프로젝트인 &lt;여성화가와 일반인 남성 모델&gt; 작업에서 첫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당시에 발상 그 자체로 촉발되는 모델과 화가의 관계 만으로도 오랜 미술사에서의 여성과 남성, 재현의 주체와 객체 사이의 관습적 구도를 거스르는 용기 있는 도전으로, 그는 상황 자체에서 오는 심리적 불안감이나 미묘한 긴장감을 회화 행위로 나타나게 두었다. &lsquo;모델을 보았을 때 즉발적으로 일어나는 감정과 그에 따르는 제스처&rsquo;, &lsquo;그리는 과정에서 생기는 긴장까지 그대로 노출하여 붓질에 옮기면서&rsquo;, 그에게 초상화란 인물을 그리는 것보다 붓질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충동을 기록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 되었다. 이러한 태도는 유현경의 회화를 견지하고 있다. 뻔한 것이 아닌 고통스럽고 위험해 보이고 예측 불가능한 일에 관한 한, 그것은 무언가를 넘어서려는 혹은 자기 자신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곧 예술이기에 가능하다.</p><!-- /wp:paragraph --><!-- wp:paragraph --> <p>잠재된 내면 감정의 변화는 곧 붓질과 행위, 물질의 흔적으로 화면에 고스란히 남아 관객의 또다른 감정을 이끌어낼 수 있다. 모종의 관계보다는 대상과 대면하는 만남 그 자체가 중요한 테마이며, 그대로의 재현이 아닌 행위가 강조되는 그림이다. 예민함과 긴장, 결핍과 금기된 것들의 욕망으로서의 에너지 발산은 차츰 자기를 들여다보며 시간을 견디고 기다리는 태도로 자아의 인식과 변화의 과정을 거친다. 작품 속에 표현된 것은 변해가고 흐르는 시간의 형상에 다름아니다.</p><!-- /wp:paragraph --><!-- wp:paragraph --> <p>이제 그의 초점은 삶과 예술, 시간의 깊이와 세계의 근원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으로 확장하고 있다. 작가는 어느덧 다시 현재의 익숙함에서 벗어나 또다른 시간과 공간을 꿈꾼다. 그가 누리고 싶은 자유와 깊이를 가진 시간은 철학자의 &lsquo;들길&rsquo;을 걷듯, 길고 느린 것의 시간, 머무름을 가능하게 만드는 시간일까? 그 옛날 &lsquo;스콜레&rsquo;의 삶, 곧 강제나 필요, 수고나 근심이 없는 자유의 상태일까? 생각해 보면, 피안에의 꿈은 이미 그의 삶 속에서, 베를린으로 오기 전부터 이미 시작되었고, 모든 삶이 그러하듯 다가서면 저만큼 물러서기를 거듭하여 희망으로, 욕망으로 반복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이 그의 &lsquo;창조&rsquo;적 삶과 예술을 지속적으로 추동하는 요인임은 분명해 보인다. 전시는 &lsquo;시간을 담은 풍경&rsquo;을 통해 초상화 이후 베를린으로의 이주를 전후하여 현재까지 유현경 작업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또다른 장을 열어 보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p><!-- /wp:paragraph --><!-- wp:paragraph --> <p><em>&ldquo;</em><em>아무 기대도 없는 곳 </em><em>&middot;&middot;&middot; </em><em>기대에 부응해서 살아가는 삶 말고 좀 더 자유로운 곳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하고 지냈다. 그 기대에 부응하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제도를 충족하지 않는 생각들을 하며 살고 싶었는데, 그런 것들이 나에게는 광야, 척박한 땅들, 풍광, 자연 그런 요소로 등장하게 된 것 같다.&rdquo; </em>&nbsp;―작가노트 2025</p><!-- /wp:paragraph --><!-- wp:paragraph --> <p>글│강주연 Gallery JJ Director</p><!-- /wp:paragraph -->

종료

2025년 5월 1일 - 2025년 5월 31일

권기수 Kwon Kisoo: Across The Universe

<!-- wp:paragraph --> <p>갤러리JJ는 미소 짓는 인물 &lsquo;동구리&rsquo;로 잘 알려진 권기수 작가의 개인전 ≪권기수: Across The Universe≫를 개최한다. 권기수(b.1972)는 자신이 창조한 &lsquo;동구리&rsquo;라는 기호를 매개로 인간과 세계와의 이상적 관계에 관해 성찰하고 질문한다. 그는 회화를 중심으로 조각, 설치, 영상 애니메이션 등 현대미술의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특히 한국 전통회화의 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내러티브와 이를 현대적인 감각과 매체로 표현하고 확장하는 작업으로 동시대미술의 새로운 가능성과 독창성을 내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는 서울, 판교, 파주에 위치한 8곳의 전시장에서 동시에 펼쳐지는 &lsquo;현대 한국미술의 발견&rsquo; 프로젝트(김노암 기획)의 일환으로 진행된다. 한국 현대미술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중견작가를 집중 조명하여 한국 미술의 저변을 확대하고자 기획된 이 프로젝트는 권여현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로, 권기수의 예술세계를 총체적으로 들여다보고자 한다.</p><!-- /wp:paragraph --><!-- wp:paragraph --> <p>갤러리JJ에서는 그의 대표적인 &lsquo;Reflection&rsquo; 시리즈를 중심으로 &lsquo;파초&rsquo; 시리즈, &lsquo;sky&rsquo; 등 회화 19점과 드로잉 6점, 금박을 입힌 동구리 조각 <hi-universe> 2점을 선보인다. 약 25년간 우리 곁에 있어왔던 &lsquo;동구리&rsquo;와 함께 화면 속 풍경을 따라 천천히 거닐 수 있는 서사구조에는 전통 산수화의 수사적 시공간이 겹쳐진다. 마치 도원경 속 인물처럼 자연과 하나 되어 풍경 속으로 관객을 안내하는 동구리는 천진난만하게 보여 유쾌하지만 한편 냉소적으로 비쳐질 수 있으며, 때로는 표현적인 터치의 절규하는 듯한 모습으로도 나타난다. 동구리는 이상적인 인간이나 원형적 존재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한편 페르소나 곧 사회 속 획일적인 웃음, 고독과 소외감을 느끼며 부유하는 오늘날 우리 모습의 반영일 수도, 그러한 지친 현대인에게 따뜻한 미소를 건네는 친구일 수도 있다. 관객은 동시대 어법의 견고한 회화 속에서 옛 전통의 맥락과 어원을 발견하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hi-universe></p><!-- /wp:paragraph --><!-- wp:paragraph --> <p>일견&nbsp;선명한 색채와&nbsp;매끄러운 표면의 화면은 컴퓨터로 정확하게 구분된 색면과 간결한 선으로 구성되어 평면적인 회화 공간을 이룬다. 작가가 직접 조합한 아크릴 물감 600여 가지 색상을 사용하는 등 작업은 높은 완성도와 기계적인 정교함, 시각적 화려함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최소한의 기본 형태로 다듬어진 기호들은 다름아닌 사군자, 시서화의 형식 그리고 대나무숲, 매화, 파초, 쪽배와 보름달 등 전통적 문인화와 산수화의 요소들이다.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의 무의식적으로 발현되는 전통적 사고와 방식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표현이겠으나, 정작 그것은 작가 자신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되고 동시대 모습의 알레고리가 된다. 이러한 작업을 두고, 동양화를 해체하는 전복적인 회화로서의 팝아트(최범), 문인화의 정신성을 기본 바탕으로 우리 시대의 표현방식과 어법으로 표현해낸 우리시대의 메타문인화(이건수), 현대 한국화의 전통을 세계미술의 흐름과 접목시켜 동서양,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이 합쳐진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작업(김노암) 등 많은 해석들이 있다.</p><!-- /wp:paragraph --><!-- wp:paragraph --> <p>동구리가 있는 공간은 주로 유토피아, 이상향의 자연의 공간으로 나타난다. 조선 후기 회화의 역사를 오랫동안 연구해왔던 작가는 노장사상을 비롯해 죽림칠현이나 강태공, 조선의 사대부들이 꿈꾸었던 이상향을 차용하여 자신이 꿈꾸는 유토피아, 이상적인 가상세계를 현실세계와 반영하면서 자유롭게 표현한다. 평론가 유진상에 의하면 권기수는 &ldquo;한국화의 대표적인 장면들에서 다루어진 장소, 인물, 시점 등을 기호들과 기하학적 형태들로 재구성함으로써 회화적 읽기의 새로운 방식들을 제안한다.&rdquo;</p><!-- /wp:paragraph --><!-- wp:paragraph --> <p>권기수는 1990년대 후반부터 수묵의 전통과 현대화에 대한 고민 속에서 다양한 매체적 실험을 통해 동양 사상의 전통에 근거하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하였다. 한편으로는 2000년대 당시 주목을 끌었던 한국의 팝아트에서 발견되는 캐릭터적 요소와 &lsquo;동구리&rsquo;의 이미지가 시기적으로 잘 부합하여 한데 묶는 경향이 있었다. 비슷한 시기 뉴욕에서 펼쳐진 구글의 글로벌 아트프로젝트 등 국내외 굵직한 이벤트와 더불어 주요 미술관들에 작품이 소장되는 등 그의 작업은 한국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p><!-- /wp:paragraph --><!-- wp:paragraph --> <p>작업의 시작은 늘 전통에 뿌리를 두지만 지극히 현재, 이 순간의 모습으로 바뀔 수 있다. 2014년 경부터는 대나무를 지워 나가는 작업인 &lsquo;후소後素&rsquo; 시리즈가 나타났다. 지우고 비움으로써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음에서다. 한편 일찍이 작품에 등장한 컬러 막대 형태의 대나무 숲은 죽림칠현과 같은 전통적인 이상향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금의 시선에서 그 수직적인 형태는 빌딩 숲, 마천루의 공간을 연상시키며, 마찬가지로 동구리가 올라앉은 상자 형태의 기암괴석은 오늘날의 기하학적 아파트, 네모난 창으로 비약하기도 한다. 금박을 입힌 시리즈는 &lsquo;금(金)&rsquo;이라는 매체가 지닌 상징적인 의미를 해체시키며 새로운 서사를 구축한다. 귀하고도 허망하여 성과 속을 오가는 금박 물질은 이중성을 표현하기에 좋은 매체이기에 이 또한 삶의 이중성에 대한 메타포로 작용한다.</p><!-- /wp:paragraph --><!-- wp:paragraph --> <p>제목에 자주 등장하는 &lsquo;Reflected&rsquo;는 권기수 작업의 많은 것을 설명해주고 있다. 인물의 배경에서 동그란 물결 파문과 함께 정확히 대칭으로 반영되는 두개의 세계는 현실과 가상, 실재와 환영으로 서로 마주하는 추상적 공간이다. 그의 작업에는 이상향과 일상의 장소가 교차하고 있다. 파초로 둘러싸인 낭만적인 공간은 치열한 정치적 공간이기도 하고, 유유자적 배를 타고 가는 동구리의 여정은 인생에서의 인고의 세월일 수도,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는 동구리는 녹녹치 않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일 수 있다. 인간은 한정된 시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기를 꿈꾸는 존재다. 때로 기존의 공간을 전도시키고, 낯섦을 통해 우리의 일상성을 들여다볼 수 있다. 도달할 수 없는 꿈일지라도 작가는 이를 통해 역설적으로 이상적 세상, 이데아의 세계를 탐색하고 인간다운 삶의 가능성을 질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권기수의 작업은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현실과 이상, 그 어느 곳에도 정박하지 않는다.</p><!-- /wp:paragraph --><!-- wp:paragraph --> <p><strong>작가소개?</strong></p><!-- /wp:paragraph --><!-- wp:paragraph --> <p>권기수(b.1972)는 성별이나 나이로 규정지어지지 않는 사람을 의미하는 기호인 '동구리'를 창조, 동양의 전통적인 사상과 기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을 선보이며 한국미술의 저력을 세계에 알려왔다. 홍익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한국화를 전공하였으며, 베니스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 상하이 Long Museum, 로스앤젤레스 Museum of Contemporary Art(MOCA), 샌프란시스코 Asian Art Museum, 일본 MORI ART Museum, 런던 Saatchi Gallery, 뉴욕 Museum of Arts and Design(MAD), 뉴욕 UN본부, 타이베이 MoCA, 북경 Today Art Museum 등 해외 유수 기관의 전시에 참여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p><!-- /wp:paragraph --><!-- wp:paragraph --> <p>2003년 이스라엘 Jerusalem Center for Visual Arts의 레지던스에 초대된 것을 시작으로 2008년에는 제프 쿤스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현대미술 작가들과 함께 두차례에 걸쳐 iGoogle 아티스트 프로젝트에 선정되면서 일찍이 국제적 작가로서 명성을 다졌다. 2015년,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장학재단 중 하나인 풀브라이트 장학 프로그램(Fulbright Scholar-in-Residence)에 선정되어 미국 Concordia College에서 방문 교수를 역임하였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립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등 국내 주요 미술관을 비롯하여 상하이 Long Museum, 샌프란시스코 Asian Art Museum, 베니스 Fondazione Claudio Buziol 등 해외 주요 미술기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p><!-- /wp:paragraph --><!-- wp:paragraph --> <p>글│강주연 Gallery JJ Director</p><!-- /wp:paragraph --><!-- wp:paragraph --> <p><br /></p><!-- /wp:paragraph --><!-- wp:paragraph --> <p><br /></p><!-- /wp:paragraph -->

진행 중

2025년 5월 1일 - 2026년 5월 31일

권기수ㅣAcross The Universe

<p>갤러리JJ는 미소 짓는 인물 &lsquo;동구리&rsquo;로 잘 알려진 권기수 작가의 개인전 ≪권기수: Across The Universe≫를 개최한다.</p> <p>권기수는 자신이 창조한 &lsquo;동구리&rsquo;라는 기호를 매개로 인간과 세계와의 이상적 관계에 관해 성찰하고 질문한다.</p> <p>그는 회화를 중심으로 조각, 설치, 영상 애니메이션 등 현대미술의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p> <p>특히 한국 전통회화의 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내러티브와 이를 현대적인 감각과 매체로 표현하고 확장하는 작업으로 동시대미술의 새로운 가능성과 독창성을 내보이고 있다.</p> <p>이번 전시는 서울, 판교, 파주에 위치한 8곳의 전시장에서 동시에 펼쳐지는 &lsquo;현대 한국미술의 발견&rsquo; 프로젝트(김노암 기획)의 일환으로 진행된다.</p> <p>갤러리JJ에서는 그의 대표적인 &lsquo;Reflected&rsquo; 시리즈를 중심으로 &lsquo;파초&rsquo; 시리즈, &lsquo;sky&rsquo; 등 회화 19점과 드로잉 6점, 금박을 입힌 동구리 조각 2점을 선보인다.</p> <p>&nbsp;25년간 우리 곁에 있어왔던 &lsquo;동구리&rsquo;와 함께 화면 속 풍경을 따라 천천히 거닐 수 있는 서사구조에는 전통 산수화의 수사적 시공간이 겹쳐진다.</p> <p>마치 도원경 속 인물처럼 자연과 하나 되어 풍경 속으로 관객을 안내하는 동구리는 천진난만하게 보여 유쾌하지만 한편 냉소적으로 비쳐질 수 있으며,</p> <p>때로는 표현적인 터치의 절규하는 듯한 모습으로도 나타난다.</p> <p>동구리는 이상적인 인간이나 원형적 존재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한편 페르소나 곧 사회 속 획일적인 웃음, 고독과 소외감을 느끼며 부유하는 오늘날 우리 모습의 반영일 수도,</p> <p>그러한 지친 현대인에게 따뜻한 미소를 건네는 친구일 수도 있다. 관객은 동시대 어법의 견고한 회화 속에서 옛 전통의 맥락과 어원을 발견하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p> <p><br /></p> <p>자세한 정보는 아래 링크를 확인해주세요.</p> <div><br /></div>

진행 중

2026년 4월 23일 - 2026년 6월 6일

서용선의 생생한 생각: 단종 드로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