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장소

솔거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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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소의 전시

종료

2023년 7월 24일 - 2023년 10월 10일

Signals and Body

<ul class="depth_01 mt15" style="margin: 0px; padding: 0px; font-family: 'Noto Sans KR', sans-serif; font-size: 14px;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 <li style="margin-top: 15px; margin-right: 0px; margin-left: 0px; padding: 0px 0px 0px 10px; list-style: none; background: url(/design/images/ko/img/sub_title3.jpg) left 13px no-repeat; line-height: 160%;"><span style="color: rgb(0, 0, 0);">1관 로컬포스트(김미련&amp;손영득)-&lsquo;Re:site&rsquo; &lt;불안과 안정사이&gt;&amp;&lt;안개의 그림자 II&gt;</span></li> <li style="margin-top: 15px; margin-right: 0px; margin-left: 0px; padding: 0px 0px 0px 10px; list-style: none; background: url(/design/images/ko/img/sub_title3.jpg) left 13px no-repeat; line-height: 160%;"><site style="margin: 0px; padding: 0px;"><span style="color: rgb(0, 0, 0);">Re:site는 &lsquo;곳&rsquo;, &lsquo;장소&rsquo;라는 뜻으로서</span><span style="color: rgb(0, 0, 0);">&nbsp;</span><re: site="" style="margin: 0px; padding: 0px;"><span style="color: rgb(0, 0, 0);">라는 것은 동시대적인 시간성과 공간성을 다시 재설정한다는 의미이다. 김미련&amp;손영득 작가는 도시공간의 재개발과 난개발등으로 인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과 도시 마을의 급격한 변화는 공동체의 와해를 가져올 수 있고, 거주의 불안정성은 도시민의 삶의 질을 저하시킬수 있다. 이러한 도시의 시공간의 현재적 상황과 시공간을 이웃사람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질문하고 성찰함으로써 도시의 시공간을 재구성하고 재설정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VR영상의 인터렉티브 미디어아트를 통해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은 역사와 장소, 기억에 관한 서사를 몸의 시지각적이고 촉각적인 몰입감으로 놀이처럼 감상할 수 있다.</span></re:></site></li> <li style="margin-top: 15px; margin-right: 0px; margin-left: 0px; padding: 0px 0px 0px 10px; list-style: none; background: url(/design/images/ko/img/sub_title3.jpg) left 13px no-repeat; line-height: 160%;"><span style="color: rgb(0, 0, 0);">2관 정재은 - 비뚤어진 의자라도 괜찮아</span></li> <li style="margin-top: 15px; margin-right: 0px; margin-left: 0px; padding: 0px 0px 0px 10px; list-style: none; background: url(/design/images/ko/img/sub_title3.jpg) left 13px no-repeat; line-height: 160%;"><span style="color: rgb(0, 0, 0);">정재은 작가는 드로잉의 방식으로 만들어진 입체적인 공간 구성을 통해 실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한 연구를 작업으로 선보이는 작품 활동을 주로 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높은 교육 수준과 풍족한 사회를 살아가는 도시인들이 가지는 공통적인 아이러니인 &lsquo;정서적 불안감&rsquo;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사회가 고도로 발달하면서 이미지와 언어를 통해 습득하는 관념은 점점 방대해져 간다. 어떤 기준에 부합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관념은 수만가지가 넘어갈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우리는 어떠한 삶의 태도를 가지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관객과 나누어 보고자 한다.</span></li> <li style="margin-top: 15px; margin-right: 0px; margin-left: 0px; padding: 0px 0px 0px 10px; list-style: none; background: url(/design/images/ko/img/sub_title3.jpg) left 13px no-repeat; line-height: 160%;"><span style="color: rgb(0, 0, 0);">3관 이상익 - 순간의 공존</span></li> <li style="margin-top: 15px; margin-right: 0px; margin-left: 0px; padding: 0px 0px 0px 10px; list-style: none; background: url(/design/images/ko/img/sub_title3.jpg) left 13px no-repeat; line-height: 160%;"><span style="color: rgb(0, 0, 0);">이상익 작가는 영화에서 등장하는 장면들을 차용하여 자신만의 회화로 재구성하는 작품을 선보인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경주라는 도시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배경과 현재의 모습이 공존하는 회화로 구성하고자 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다양한 경주의 모습과 회화라는 매체에 대중적인 레디-메이드 이미지가 혼재된 작업을 소개하고자 한다.</span></li> </ul>

종료

2023년 9월 2일 - 2023년 10월 29일

경주의 근·현대미술 배한기·이재건

<ul class="depth_01 mt15" style="margin: 0px; padding: 0px; font-family: 'Noto Sans KR', sans-serif; font-size: 14px;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 <li style="margin-top: 15px; margin-right: 0px; margin-left: 0px; padding: 0px 0px 0px 10px; list-style: none; background: url(/design/images/ko/img/sub_title3.jpg) left 13px no-repeat; line-height: 160%;"><span style="color: rgb(0, 0, 0);">경주의 근&middot;현대미술사의 주요 작가를 조명하는 전시의 일환으로 올해는 서양화가 배한기(1933~2014), 한국화가 이재건(1944~2014)의 작품세계를 소개하고 그들의 다양한 표현양식과 예술정신을 조명해 볼 수 있는 전시회를 기획하였습니다.</span></li> <li style="margin-top: 15px; margin-right: 0px; margin-left: 0px; padding: 0px 0px 0px 10px; list-style: none; background: url(/design/images/ko/img/sub_title3.jpg) left 13px no-repeat; line-height: 160%;"><span style="color: rgb(0, 0, 0);">배한기는 1933년 대구에서 출생하여 경북대학교와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다. 1963년 그림에 입문하였고 1972년 경주로 내려와 경주미협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경북대, 동국대, 영남대, 부산 산업대 등에서 강의하면서, 유화, 동양화 등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작업하여 발표하며 국내 16회, 해외 2회 총 18회의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특히, 1980년대 초부터 제작한 신라사화 40여점과 항일투쟁사화 120점 등은 지극한 신라 사랑과 민족적 열정으로 제작한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사화인 만큼 작품을 그리기까지 많은 자료를 발췌, 수집하여 구상하고 집약하는 제작 과정을 거치며 확실한 역사적 고증을 담으려 노력했다. 기록화로서 민족적 가치를 남기고자 하는 작가의 열망을 담은 작품들이다. 2008년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로 투병하다가 2014년 별세하였다. 경주미술협회 부회장을 역임하였으며, 2011년 경주문화원으로부터 경주시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 2012년에는 경북도지사로부터 자랑스러운 경북도민상을 수상하였다. 이번 전시에서 신라사화 대표작 8점과 항일투쟁사화 대표작 8점을 만나볼 수 있다.</span></li> <li style="margin-top: 15px; margin-right: 0px; margin-left: 0px; padding: 0px 0px 0px 10px; list-style: none; background: url(/design/images/ko/img/sub_title3.jpg) left 13px no-repeat; line-height: 160%;"><span style="color: rgb(0, 0, 0);">이재건은 1944년 경북 군위군 출생으로 아버지를 따라 경주로 이주하였다. 대학 입학 전까지 줄곧 경주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1963년 홍익대학교 미술학부 동양화과에 입학하였고. 졸업 후 1967년 경주 삼보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복무 후 1970년 경주로 돌아와 근화여고에서 미술교사 및 경주미술협회의 사무국장을 지내기도 했다. 1972년 홍익대 대학원 회화과 입학하여 상경하였으며, 재학 중 &lt;한국현대청년미술가회&gt;,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lt;제1회 앙네팡당(independent)전&gt;, &lt;제2회 S.T(현대미술 청년작가전)&gt;에 참여하였다. 1973년 서양화가 조성희를 만나 결혼한 후 1974년에 경주로 돌아와 현대 청년 작가 그룹을 결성하고 대구를 중심으로&lsquo;젊은 세대전&rsquo;, &lsquo;오늘의 대구미술전&rsquo; 등에서 구상화 계열의 작품을 제작하였다. 1976년 &lsquo;개미화실&rsquo;을 열어 학생과 일반인들을 가르쳤으며 1983년 계명대학교 대학원 회화과에 입학했다. 이때 현대 구상화 계열의 작품을 시도하며, 재료와 양식에서 동서양 혼용적인 회화를 추구한다. 재학 중 정점식 교수를 만나 &lsquo;미술은 지성이다&rsquo;라고 하는 결정적인 철학을 그의 창작 세계의 신조로 받아들였다. 1992년, 신라역사과학관의 석우일 관장으로부터 &lsquo;신라왕경도&rsquo;제작을 의뢰받고 1년 이상의 사전답사와 고증작업을 거쳐 신라왕경도의 제작을 착수하여 2년 만에 완성한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경주박물관에 영인본이 전시되어 있다. 2004년에는 1800년대 경주의 성과 마을 모습을 복원한 &lsquo;경주읍성복원도를 제작하였으며 2006년 경주시문화상 예술부분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2009년 페암을 진단받고 투병하다가 2014년 71세로 영면하였다. 유언에 따라 시신을 동국대경주병원에 기증해 지역사회에 큰 울림을 주었다. 사후 한국예총경주지회로부터 경주예술인상 미술부문을 수상했다. 한국미술협회 경주지부장을 역임하였으며, 생전 화가로서의 활동뿐만 아니라 경주문화원 부설 향토문화연구소의 연구위원으로 10여간 활동하면서 미술교양강좌를 개설하여 강의하고, 각종 매체에 논고를 집필하고 칼럼을 연재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지역문화예술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span></li> </ul>

종료

2023년 10월 28일 - 2024년 6월 16일

소산 수묵 - 개방과포옹

<p><br /></p> <p><span style="font-weight: bold;">전시서문</span></p> <p>경주솔거미술관은 &ldquo;소산수묵 : 개방과 포용&rdquo;전을 통해 소장 작가인 박대성 화백의 수묵화가 이루어낸 업적과 박대성 화백의 화업이 동시대 미술계에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고찰해보고자 한다. 이번 전시에는 박대성 화백의 90년대 작품부터 최근작까지 한데 모았으며, 임서와 소산체를 연구한 수작들을 선보인다.</p> <p><br /></p> <p>박대성 화백은 유년시절 겪은 감당하기 어려운 비극을 극복하기 위해 붓을 들었다. 비극이 앗아간 왼쪽 팔은 장애에 대한 인식이 희미하던 시대에 크나큰 걸림돌이었다. 박대성 화백은 삶의 고통을 그림 그리기로 극복하였다. 그리기는 그의 유일한 즐거움이자 비극적인 삶의 탈출구였다. 박대성 화백은 장애로 인한 차별과 괴롭힘으로 정규교육과정을 끝까지 수행할 수 없었다. 대신 그림공부에 힘을 썼다. 박대성 화백은 그림 그리는 것을 평생의 업으로 삼고 공부에 매진하기 시작하였다.</p> <p><br /></p> <p>그림공부에 대한 열망으로 박대성 화백은 유년 시절부터 한반도의 산천을 유랑하며 사물의 본질을 깨우치기 위해 노력하였다. 어디든 그리고 싶은 대상을 발견하면 그 곳이 화실이 되었다. 그리고 당차게 스스로 스승을 구하였다. 화백은 여러 스승을 모시며 다양한 화풍을 섭렵하였다. 이러한 수묵에 대한 열망과 집착에 가까운 집념은 보여주기 위한 그리기를 넘어서 자기 수행의 영역으로 그를 인도하였다.</p> <p><br /></p> <p>박대성 화백은 자유로운 필치로 붓을 운용하기 위해 명필가와 명화가의 먹선을 따라가며 그들의 호흡과 흐름을 배우는 하도 작업(임서, 임모)을 오랜 시간 수행 하였고, 대가의 반열에 올라선 지금도 변함없이 수행하고 있다. 박대성 화백은 현재도 매일 아침 기상하여 묵상과 임모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의 작업실에는 하도 작업에 사용된 얇은 한지가 집채만큼 쌓여있다.</p><p><br /></p> <p>앞서 설명한 것처럼 부단한 노력으로 박대성 화백은 현재의 소산 수묵을 완성하였다. 그리고 한국 수묵화의 대가이자 대표 작가로서 유럽과 북미 등을 순회하며 소산 수묵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p> <p><br /></p> <p>소산만의 독창적인 수묵화법은 9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하였는데, 1996년에 그려진 &lsquo;천년배산&rsquo;이 대표적인 예 이다. 이 그림에 주목해야할 이유는 과거의 법도와 기법을 중시하는 수묵의 세계에 기법과 정신이 완전히 다른 서양화의 관점이 동아시아 3국의 수묵기법과 융화되어 구현되었다는 것에 있다. 전통을 지키되 창조를 위한 개방과 포용이 그림에 고스란히 녹아있는 것이다.</p> <p><br /></p> <p>서로 다른 장르의 기법을 조화롭게 융합하기 위해서는 대상의 깊이 있는 이해도와 숙련도가 필요하다. 이러한 지점에서&lsquo;천년배산&rsquo;은 과거의 한국화와 달리 완전히 새로 그려진 그림이나 기존의 수묵화를 고려하였을 때 별다른 위화감이 들지 않는다. 원래 있었던 장르의 그림처럼 자연스럽게 관객에게 다가온다. 자연스러움은 익숙함을 의미하며 익숙함은 편안함과 연결된다. &lsquo;천년배산&rsquo;이 완전히 새로운 방법으로 그려졌지만 편안하게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은 오랜 하도작업으로 얻어진 단단한 기초와 타 장르의 기법을 포용하고 적용하는 실험적인 작가정신이 투영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p> <p><br /></p> <p>작가는 무릇 한 순간에 탄생하지 않는다. 부단한 노력과 통찰력이 수반되어야 하며 반복된 훈련이 요구된다. 이번 전시를 통해 산수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새로운 대작을 그려내는 노작가의 정신이 많은 이들에게 건강한 메시지로 전달되기를 바란다.</p>

종료

2023년 11월 4일 - 2024년 2월 25일

경주미술인 공모선정전 Part 1

<p><br /></p> <p><span style="font-weight: bold;">정수연 - 내면의 흐름</span></p> <p><span style="font-weight: bold;"><br /></span></p> <p>나의 모든 작품들은 내면에 집중해 흐름을 느끼며 현실로 표면화한다. 이는 환상을 꿈꾸는 나의 이상을 중심으로 움직이며 때론 잔잔히 흐르기도 하고 격렬하게 표현되며 곡선과 직선이 서로 혼용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넓게 퍼지는 듯한 선의 움직임 때론 하나의 중심으로 모이는 듯한 표현. 현대적이면서도 직선적인 표현...각 다른 형식들의 표현은 내면으로부터 시작되어 흐름으로 나타난다.</p> <p><br /></p> <p>이는 작품 전체의 시작점을 의미하며 그 중심은 환상을 꿈꾸는 이상으로 나타난다. 이를 통해 표현되는 나의 작품들은 지나가는 모든 환상들 의 총합이며 현재를 살아가는 나의 이정표이다.</p> <p><br /></p> <p><span style="font-weight: bold;">최용석 - 철화문 항아리전</span></p> <p><span style="font-weight: bold;"><br /></span></p> <p>이번 작업은 도자예술의 과거, 현재, 미래를 함축시킨 종합 예술을 보여주려고 한다. 환경의 변화를 수용하고 전통의 가치를 현대로 계승하는 작업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늘 그래왔듯이 흙을 빚어 새로운 도자기를 탄생시키고자 초심으로 돌아가 내 작업에 최선을 다해본다.</p> <p><br /></p> <p>흙을 쳐대다.</p> <p><br /></p> <p>손으로 꼬막밀기를 하면서 흙의 공기를 빼고 꼬여있는 흙덩이를 풀어내 순간 만들어지는 형상들, 도예가는 느낌대로 물레질을 하며 나만의 작업 여행을 떠난다. 소박하고 순백한 형태, 친숙함을 녹여 산화철(Fe2O3)을 붓 끝의 선의 굵기로 곡선을 표현하여 다각도 시선에서 보이는 느낌을 강조. 태토(胎土)속의 화장토 위 철화기법의 흙, 유약, 불의 요변으로 완성품에서 보여주는 오묘한 색감은 3차원적인 색과 선의 조화로 변화된 감성을 느끼게 한다.</p>

종료

2023년 9월 28일 - 2024년 6월 2일

당신이 바라는, 누군가 바라보는

<p><span style="color: rgb(0, 0, 0);"><br /></span></p> <p><span style="color: rgb(0, 0, 0); font-weight: bold;">전시서문</span></p> <p><span style="color: rgb(0, 0, 0);">한승구 작가는 서울대학교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서강대학교에서 영상예술공학을 전공하였다. 그의 관심사는 군중속의 자아가 어떻게 표출되고 숨겨지는지에 대한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석사 졸업 후인 2010년대에는 얼굴을 활용한 &lt;mirror mask&gt;라는 작품으로 본능적인 자아를 내면에 숨기고 사회적 자아를 통해 사회에서 카멜레온처럼 살아가는 일반 대중의 모습을 그려내었다. &lt;mirror mask&gt; 시리즈에서는 자아를 &lsquo;숨거나 이탈하는 영역&rsquo;에서 서술하였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을 노출시키면서 겪는 현실을 극복하고 개인의 영역을 확장하여 환경이 자아에 의하여 변하는 개념을 표출하기 시작하였다. &lt;skin of skin&gt;에서 등장하는 별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다양한 색으로 자신을 표출하고 있다. 별들은 하나의 자아로써 별들</span><span style="color: rgb(0, 0, 0);">이 만들어낸 공간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모습이다.</span></p> <p><span style="color: rgb(0, 0, 0); font-weight: bold;"><br /></span></p> <p><span style="color: rgb(0, 0, 0); font-weight: bold;">작가노트</span></p> <p><span style="color: rgb(0, 0, 0);">&lt;skin of skin&gt;은 동식물의 자기 보호 기능인 미미크리(mimicry)&sup1;에서 차용한 작품이다. 미미크리는 자기 보호 기능인 위장, 변장으로 주로 알려져 있지만, 이면에는 위협의 기능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본 작품은 사회 속에서 자아를 위장하는 기능과 외부의 존재에 대해 위협함으로써 자아를 노출시키는 동시에 자아의 존재성을 확인하려는 의도를 내포한다.</span></p> <p><span style="color: rgb(0, 0, 0);"><br /></span></p> <p><span style="color: rgb(0, 0, 0);">즉, &lt;skin of skin&gt;는 개인의 위장, 보호, 위협의 욕망을 함축한다. 그래서 은 빛으로써 자아를 노출시켜 화려하게 위장하고 때로는 자아를 주변 환경과 일치시켜 은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노출과 은신을 통해 개인들은 사회 속에서 생존하며 존재성을 확인하게 된다.</span></p> <p><span style="color: rgb(0, 0, 0);"><br /></span></p> <p><span style="color: rgb(0, 0, 0);">1) 동물이 몸을 보호하거나 쉽게 사냥하기 위해서, 주위의 물체나 다른 동물과 매우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는 일을 말한다.</span></p>

종료

2023년 12월 23일 - 2024년 2월 25일

경주미술인 공모선정전 Part 2

<p>송해용 - 가슴으로 피워낸 사랑꽃</p> <p>온통 사랑에 대한 이야기 들이다. &hellip; 나는 꽃을 매개로 이런 사랑과 열정을 표현하고자 한다. 그리움과 기다림을 간직한 채&hellip;</p> <p><br /></p> <p>오승민 - 눈으로만 봐주세요</p> <p>존재하지만 존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며, 필요하지만 때론 필요치 않는 모든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hellip; Do not touch.</p> <div><br /></div>

종료

2023년 12월 22일 - 2024년 3월 10일

玄之又玄 (현지우현)

<p>고암이응노생가기념관-솔거미술관 공동기획 교류전</p> <p><span>玄之又玄 (현지우현)</span></p> <p><br /></p> <p>- 참여작가 : 고암 이응노, 소산 박대성</p> <p><span>- 전시기간 : 2023. 12. 22.(금) ~ 2024. 3. 10.(일)</span></p> <p><br /></p>

종료

2024년 6월 22일 - 2024년 8월 4일

현지우현: 玄之又玄

<p><span style="font-weight: bold;">넓고 큰 이치는 변함이 없으니, 오묘하고 또 오묘하도다.</span></p> <p><br /></p> <p>경상북도문화관광공사 경주솔거미술관은 한국 근현대 화단에 큰 발자국을 남긴 이응노 화백의 탄생 1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소산 박대성 화백과의 교류전을 준비하였다. 이번 교류전은 홍성군에 소재한 이응노 생가 기념관과 함께하는 공동 전시로서 2023년 11월에 1차 전시가 홍성에서 개최되었으며, 경주솔거미술관에서 이응노 화백을 소개하는 전시를 선보인다. 이번 전시를 통하여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두 거장이 걸어온 흔적을 살펴보며 한 평생을 그림에 바친 두 사람이 추구한 삶의 이치를 살펴보고 제고하고자 한다.</p> <p><br /></p> <p><span style="font-weight: bold;">1. 이응노</span></p> <p>이응노 화백은 일제의 식민 시대인 1904년 충청남도 홍성에서 태어나 한국전쟁과 격동하는 한국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었다. 그는 서당을 운영하였던 아버지에게 한문을 배웠으며, 보통학교를 다니며 그림 그리기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신식 교육과 문화를 받아들이며 끊임없이 외부 세계로 호기심이 생겨났고 인생을 개척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신신교육과 현대 문물에 부정적이었던 가풍으로 인해 아버지와 잦은 충돌이 있었다.</p> <p>이응노 화백은 1922년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울로 상경하여 고인이 타는 상여에 그림을 그리는 일부터 간판 제작까지 다양한 일들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그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그림을 그리고 배웠다. 그의 노력과 별개로 그 당시 가장 큰 미술대회인 &lt;조선 미술전&gt;에서 6번이나 낙선하였다. 당시 전통적인 서화를 그렸던 이응노 화백은 자신이 배운 그림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30대에 들어서 다시 일본으로의 유학을 감행하였다. 일본에서는 유행하였던 풍경화를 주로 배우고 그렸다. 그렇게 전통적인 서화에서 서양식의 풍경화로 화풍을 옮겼다. 식민지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을 넘나들며 배운 그림들은 식민 문화 정치에서 파생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이응노 화백이 그 당시 획득한 배움은 향 후 그의 그림이 추상으로 변화하는데 중요한 작용을 하게 된다.</p> <p>시간이 흘러 대한민국은 해방을 맞이하게 되었고 가까운 시기에 한국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전쟁은 한반도 전체를 폐허로 만들었고 예술인들 또한 전쟁의 상흔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가난과 분노가 만연한 사회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당시 예술계가 세계의 흐름과 정세를 받아들이기 좋은 환경이었다. 계급이 사라지고 잔악한 식민정치도 사라졌으니 자유롭게 사고하고 배울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응노 화백은 전쟁 직전 홍익대학교 미술학부 교수로 부임하였고, 1954년에는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에 출강을 하는 등 예술계에서의 활동을 이어갔다.</p> <p>한국전쟁 휴전 이 후, 이응노 화백은 교수직을 내려놓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프랑스에 정착하여 다양한 서양 미술을 접하면서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만들어 갔으며, 그 예술세계에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 많은 작용을 하였다. 이응노 화백은 한국전쟁 중에 양자로 삼은 아들이 의용군으로 끌려갔으며 북한군의 포로가 되었다. 이 사건은 먼 훗날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으로 연결된다. 이응노 화백은 전쟁 이후 아들이 북한군 포로로 잡혀있다는 사실을 알고 아들과의 만남을 위해 독일에 소재한 북한 대사관과의 접촉으로 간첩 사건에 연루되었다. 아들을 보기 위한 행위가 간첩 행위로 간주되어 서대문 형무소와 대전, 안양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그 곳에서 300점에 이르는 작품을 제작하였다. 그 이 후 프랑스에서 창작활동을 이어가며 군상 시리즈를 제작하는 등 세계 예술계에 족적을 남기게 된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러 85세가 되던 해에 간첩 혐의가 풀리면서 한국 미술계로 복귀를 준비하였다. 86세가 되던 해에 호암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하고 귀국을 앞둔 시점에 심장 마비로 생을 마치게 된다. 현재 이응노 화백의 유해는 파리에 있는 묘역에 안장되어 있다.</p> <p>끊임없는 세계 질서의 변화 속에서 이응노 화백의 삶도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하였다. 홍성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프랑스 파리로, 그 후 동백림 사건으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여정까지 다사다난한 삶의 파도를 묵묵히 견뎌내었다. 그와 동시에 낯선 것에 적응하고 융화되며 인식의 지평을 넓혀 갔다. 그렇게 전통 수묵화로 예술계에 발을 들인 이응노 화백은 당시 세계 미술사의 흐름이었던 &lsquo;추상(abstracting)&rsquo;예술을 수용함으로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조형언어를 탄생시켰다. 이응노 화백의 회화와 조각은 한국 미술이 가진 정체성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회화로서 한국 미술이 세계에 나설 수 있는 근간을 만들어 주었다.</p> <p><br /></p> <p><span style="font-weight: bold;">2. 박대성</span></p> <p>박대성 화백은 1945년 경상북도 청도의 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해방의 기쁨도 잠시, 5살이 되던 해에 한국전쟁이 발발하였으며 청도 산골 마을도 전쟁의 화마를 피해가지 못하였다. 박대성 화백은 5살 되던 해에 전쟁의 상흔으로 부모와 왼쪽 팔을 잃어버렸다. 감당하기 어려운 큰 고통과 상처를 너무 어린 나이에 경험한 박대성 화백은 친척집을 전전하며 그림을 통해 본인을 치유하였다. 학업은 중도에 그만두었다. 그림 그리기에 전념한 그는 전국의 산천을 돌며 그림을 그렸다. 20대에는 대구를 거점으로 자연을 스승으로 모시고 선대의 화가인 추사 김정희와 겸재 정선 과 같은 명 화가들의 그림을 쫓으며 부단히 노력하였다. 그 결과 무학의 화가가 1976년 대한민국 &lsquo;중앙 미술대전&rsquo;에서 대상을 받아내는 쾌거를 이룩하였다. 그러나 학벌과 파벌이 중시되던 그 당시 미술계에서는 박대성 화백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p> <p>무학의 화가라는 인식과 장애에 대한 편견은 무시할 수 없는 콤플렉스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겨내지 못 할 벽도 아니었다. 박대성 화백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끊임없이 그림을 공부 하였다. 80년대에 들어서는 세계를 유랑하며 그 곳의 정취와 풍경을 그렸다. 그리고 세계 각지의 그림과 문화를 경험하였다. 박대성 화백은 전통 수묵을 바탕으로 풍경화와 서화를 그렸다. 80년 대 이후부터 박대성 화백의 그림에서 전통적인 수묵의 양식과 혼재된 서양 모더니즘 회화의 양식들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수묵이 가지고 있는 큰 줄기는 중심을 유지하였다. 대신 서양 모더니즘의 양식적인 측면들이 녹아들어서 수묵이 지닌 특성과 어우러지는 풍경화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p> <p>80년대 후반에는 대기업의 전속 작가로서 대형 개인전을 개최하고 다양한 전시에 초대되기 시작하였다. 각고의 노력 끝에 박대성 화백이 추구하는 예술세계가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한 시기였다. 그러나 10년 정도가 지난 뒤 돌연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경상북도 경주에 터를 잡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p> <p>박대성 화백의 그림은 경주 생활 이 전과 이 후로 나누어 질 만큼 극명한 화풍의 변화를 겪었다. 작가에게 화풍이 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40대 이 후 자신이 성취하고 인정받은 그림들로부터의 해방은 더욱 쉽지 않다. 충분히 이룰 것을 이룬 50대 작가가 다시 창작이라는 고뇌의 숲으로 들어간 것이다.</p> <p>변화의 노력 끝에 1996년&lsquo;천년배산&rsquo;을 완성하였다. 이 그림이 한국 수묵화단에 던진 화두는 동시대에 수묵화가 나아가야 할 길이었다. 과거의 법도와 기법을 중시하는 수묵의 세계에 기법과 정신이 완전히 다른 서양화의 회화 양식이 수묵기법에 융화되어 구현되었다. 전통을 지키되 창조를 위한 개방과 포용이 그림에 고스란히 녹아든 것 이다. 이 후 계속된 창작활동으로 소산수묵이라는 독창적인 장르를 개척하였다.</p> <p>서로 다른 장르의 기법과 정신을 조화롭게 융합하기 위해서는 대상의 깊이 있는 이해도와 숙련도가 필요하다. 이러한 지점에서&lsquo;천년배산&rsquo;은 과거의 한국화와 달리 완전히 새로 그려진 그림이나 기존의 수묵화를 고려하였을 때 별다른 위화감이 들지 않는다. 원래 있었던 장르의 그림처럼 자연스럽게 관객에게 다가온다. 자연스러움은 익숙함을 의미하며 익숙함은 편안함과 연결된다. &lsquo;천년배산&rsquo;이 완전히 새로운 방법으로 그려졌지만 현재까지 작품성이 화자되고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은 오랜 하도작업으로 얻어진 단단한 기초와 타 장르의 기법을 포용하고 적용하는 실험적인 작가정신이 투영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p> <div><br /></div>